타클라마칸 배달사고 완성판

병섭4 2014.12.03 21:42

스마트폰 어벤져스

배명훈, <타클라마칸 배달사고>

 

 

-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

 

이름의 뜻부터 뭔가 압도적이었다.

 

대한민국보다 4배나 커다란 크기에 겨울이면 눈이 오기도 하고, 고이는 물은 대부분 사람이 먹을 수 없어 더 위험한 사막. 그러나 이 사막의 북쪽과 남쪽의 경계로 이어진 오아시스를 따라 아랍, 인도, 티벳, 중국, 러시아의 땅들이 붙어 있어 예부터 비단길로 유명했다. 1271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신임장을 받고 출발해서 17년 동안이나 중국에 머물며, 그 동안의 기록을 동방견문록으로 정리한 마르코 폴로가 둘러간 곳도 바로 이곳 - 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

 

미지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검색하자 스마트폰에 떠오른 이야기였다. ‘위키 백과라는 사이트였는데, 화면을 밑으로 내리는 대로 타클라마칸의 지형과 기후, 인물, 민족, 분쟁 등등 온갖 이야기들이 밀려 나왔다.

 

다른 블로그에 링크된 3D 지도 사이트 - 구글 어스에서는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 보는 화면에서 시작해 카메라가 줌인하듯 지정된 타클라마칸의 지역으로 쭈우우욱 확대해 들어가는 지도를 보여주었다.

 

단비야, 이거 봐봐! 오오, 이거 신기한데!”

 

미지는 지구 밖에서부터 시작해 지구의 어느 지역까지 쭈우욱 떨어져 내리는 화면을 보는 게, 이게 생각보다 엄청 신기하고 짜릿했다. 마치 자이로드롭을 타고 높은 데 끝까지 올라가서는 두 눈을 부릅 뜬 채로 땅바닥만 쳐다보고 으아악!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재밌어서, 인제 다른 것 좀 보자는 단비의 걸걸한 한 마디가 나올 때까지 미지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그 화면을 다시 봤다. 그렇게 확대해서 본 타클라마칸은 정말 모래언덕이 끝없이 이어져 마치 누렇게 말라붙은 바다 같았다.

 

다른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타클라마칸의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곳도 있었다. 놀랐던 것은 모래언덕이 바람을 따라 진짜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아마도 과학이나 지리시간에 몇 번 듣기도 했을 테지만, 그것을 이렇게 직접 영상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바람이 심한 날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높은 바위산에서 캠코더로 찍어서 빨리 보여주는 영상이었는데, 마치 모래로 된 파도가 서서히 일렁이는 것 같았다. 사람이 나르면 수 천 대의 트럭으로도 수 십 년이 걸릴 지도 모를 그 거대한 작업을 모래바람은 단 몇 일만에 해 내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그 작은 화면만으로도 그 영상은 진짜 대단했다. 미지는 정말 자연의 신비나 어떤 거대한 힘이 느껴지는 듯해서 놀라웠다.

 

 

스마트폰 논쟁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대로, 짝꿍과 함께 소설을 읽으면서 잘 모르는 것들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주기 바랍니다. , 소설에 관련된 것만 검색하는 겁니다. 소설과 관련 없는 웹서핑이나 게임, 페북질은 엄격히 금지합니다. 특히, 문자나 카톡을 하지는 말아 주세요. 우리 수업에 집중하게요. 만일 문자나 카톡을 하다 걸리면, 전송된 문자를 우리 모두 앞에서 큰 소리로 읽는 벌을 받겠습니다. 우아..무지 창피하겠죠? 그러니, 이 규칙을 꼭 지켜주세요. 부탁합니다.”

 

뭐래니? 리상샘이 뭐라뭐라 하는 소리가 끝나자마자 미지는 스마트폰에 달려 들었다. 지난 시간에 리상샘은 다음에 할 소설로 배명훈 작가의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를 소개하면서 스마트폰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소설에 대해 검색하는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핸드폰이라니, 수업시간에 핸드폰이라니, 오오~~ 하는 웅성거림이 아이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무언가 금지된 것이 다시 허락될 때의 어떤 해방감 같은 것이 아이들의 표정 속에 있었다.

 

미지네 학교는 핸드폰을 아침에 걷어서 종례시간에야 나눠 주었다.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서, 걸리기만 하면 그날 하루 압수에, 벌점 중에서도 최고 벌점인 ‘5을 받아야 했다. 무단지각이 벌점 2점이었고 흉기소지가 벌점 3점인 것에 비하면 진짜 대단한 벌점이었다.

 

하지만 미지는 모든 아이들의 핸드폰이 다 스마트폰인 듯이 너무도 당연스레 말하는 리상샘이 좀 거슬려서 볼 멘 소리로 물었다.

 

그럼 스마트폰 없는 사람들은 뭐 하나요?”

 

미지에게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핸드폰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아직 2G폰을 벗어나지 못한 미지였다. 새로 하나 사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지만, 너무 비싼데다가 액정도 쉽게 깨지는 거 같고, 뭐 좀 할려고 하면 그놈의 까똑. 까똑.’하는 소리가 영 거슬리는 게 공부를 할려면 없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개뿔!!

 

미지는 사실 스마트폰이 정말정말 갖고 싶었다. 미지네 학교와 반의 온갖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그 단톡방도 언제 어디서든 바로 들어가고 싶었고, 오늘 학교 급식의 점심메뉴가 뭔지 클릭만 하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그 간편함도 즐기고 싶었고, 멋지게 찍은 사진이나 셀카를 당장 프사에 올리고도 싶었다.

 

또 멋진 글과 사진과 영상을 올려서 미지가 얼마나 감각적이고 섬세하며 재치가 있는지 친구들에게, 아니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인정받고도 싶었다. 미지가 무슨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다기 보다, 일단은, 그렇게 하는 일이 정말 간단하니까 말이다. 페이스북에 사진 몇 장, 동영상 몇 개로 단번에 수십만의 좋아요를 받는 사람도 있었다.

 

멀리 갈 일도 아니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던 우리 반 영주는 무슨 결심을 했는지, 매주 월요일에 우리 학교 5, 전망이 좋은 서쪽 창문에서 학교의 풍경사진을 찍었다. 학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공원에는 작은 연못과 조그만 언덕과 아담한 숲이 있고 잘 정돈된 산책로에 저녁이면 조명도 은은해서, 우리 학교는 꽤 예쁜 학교로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영주는, 물론 그 사이에 몇 번 빼먹기도 했지만, 한 해 동안 우리 학교의 그 이쁜 풍경을 스물 몇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았다가 2학년에 올라오는 2월에 자기 페이스북에 올렸다. 우리 학교에서 1년을 보낸 짧은 감상을 덧붙여서 말이다.

 

영주의 사진은 순식간에 퍼져 놀랍게도 불과 열흘만에 좋아요3천이 넘었다. 댓글에는 우리 학교 애들이 써 놓은 응원과 공감의 말도 있었지만, 졸업생 언니들의 추억 돋는 댓글도 있었고, 이제 우리 학교에 입학하려는 중3 아이들의 감탄과 기대에 찬 댓글도 있었다. 근처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러움과 질투 섞인 댓글도 있었고, 심지어는 어떻게 알고 왔는지 외국어로 된 댓글도 있었다. 내 손 안에서 간단한 조작 몇 번이면 내가 만든 무언가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생생하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 간단하고 대단한 일도 먼저 스마트폰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에효, 작은 한숨이 미지의 입가로 새어 나왔다.

 

청소년 요금제로 한 달에 이 삼만원 정도면, 웬만한 스마트폰은 가질 수 있었다. 그 정도 돈은 미지의 용돈으로도 해결될 만했다.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문제는 아빠였다. 다른 것에는 그리 엄하지 않은 아빠가 유독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에는 엄격하게 반대했다. 스마트폰은 바보상자이고,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람을 중독 상태에 빠뜨리는 아주 위험한 것이라는 게 아빠의 주장이었다.

 

그 위험한 걸 아빠는 왜 샀으며, 고작 10만원 어치 사 놓은 걸로 무슨 대단한 투자인양 왜 맨날 주식시세는 들여다 보고, 주말마다 몇 시간 넘게 야구에, 드라마에, 예능에 빠져서 밥 먹다가도 맨날 엄마한테 혼나는 아빠는 뭐냐고 미지가 따져 물어도 아빠는 그거랑 이거는 다르다는, 정말이지 궁색하기 짝이 없는 말만 했다.

 

그런 일은 스마트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늘 반복되었는데, 얼마 전에 아빠의 말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미지가 씩씩 거리며 거의 소리를 지를 듯이 아빠에게 마구 따져 묻었을 때, 대답은 않고 내내 듣기만 하던 아빠가 말했다.

 

“..., 염미지.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이 얘기는 여기까지. 그만하자.”

 

아빠는, 일년에 몇 번 볼 수 없는, 웃음기 하나 없이 아주 딱딱해진 표정이었다. 뭔가 뜨겁고 날카롭고 빨간 경고등이 윙윙 대는 듯한 아빠의 표정에 미지는 일단 멈춰 섰다. 뭔가 더 말을 하면 안될 거 같았다. 그래서 아빠가 성큼성큼 미지의 옆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가 버려도, 아빠를 쫓아가지 못했다. 아빠는 거의 화를 내는 일이 없었지만, 한 번 화를 내면 무서웠다. 이 쯤 되면 생각을 좀 해야 했다. 아빠를 쫓아 가야 하나? 한 번 더?

 

미지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화를 내는 아빠를 보는 것도 물론 싫었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건, 아빠랑 그렇게 진짜 싸우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그 서먹서먹한 시간이었다. 뭔가 깝깝하고 답답하고 어색해서, 뭔가 윤기라고는 없이 바싹 말라버린 듯한 그 시간이 미지는 정말정말 불편했다. 거기까지 가야 하나? 스마트폰 때문에? 아빠에 대해 미지의 화가 풀린 것은 전혀 아니었다. 아빠의 말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여전히 고민이다. 서로 진짜로 화를 내고 싸워서 그 메마른 시간이 얼마나 가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 더 아빠에게 말을 해야 했을까?

 

여전히 혼란스러운데 스멀스멀, 그 때 풀리지 않은 화가 뜨끈하게 속에 차올랐다. 그것 때문인지 미지는 괜히 가슴까지 두근댔다. 리상샘에게 질문을 가장해 그렇게 쏘아 붙인 것도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리상샘의 대답이 또 기가 찼다.

 

... 미지학생. 스마트폰을 갖는 능력보다 스마트폰이 있는 친구를 곁에 두는 게 더 큰 능력입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스마트폰이 있는 친구를 짝꿍으로 데려오세요.”

 

아니 폰을 가져오라면서, 폰이 없다는데, 그 시간에 사람을 데려오라니 이게 무슨 개똥같은 소리란 말이냐? 꼭 질문을 하면 대답은 안하고 맨날 능력이 어쩌고 하는 그런 이상한 쫄리는 말같은 걸 던져서, 순간 우리가 당황하는 사이에 그냥 스윽 빠져 나가는 게 이 사람의 말도 안되는 특기란 걸 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또 당했다. 순간 또 뭔가 알쏭달쏭해서 미지가 더 할 말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리상샘은 미지와 눈을 마주치더니 싱긋 웃고는 스윽, 교실을 나가버렸던 것이다. 아놔, 진짜 이 남자인간들을 그냥...

 

벌써 몇 번이나 수업에 빠지고 딴 데로 새 버렸던 단비가 오늘만큼은 이 수업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미지는 아침부터 자리까지 몰래 바꿔가며, 단비 옆을 내내 지키다가 단비를 방과후수업 교실로 끌고 왔다. 단비에게는 스마트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신형에다, 예쁜 폰트에다가, 토끼양 케이스까지 있었다.

 

예전에도 단비의 핸드폰은 스마트폰이긴 했다. 하지만 완전 구형에다가 액정은 다 깨져서 전화나 될까 싶은 거였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얼마 전부터 단비는 이렇게 예쁜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으이그, 기집애, 뭔 일인지는 몰라도 단비, 너의 이 이쁜 아가는 오늘의 나를 위해 준비된 운명이었던 거야. 오늘은 이 언니가 네 스마트폰 좀 써 주실께.

 

미지가 무슨 말을 해도 빙긋이 웃기만 하는 단비를 옆에 두고, 미지는 스마트폰이 쏟아내는 이야기 속에 빠져, 나올 줄을 몰랐다.

 

 

스마트폰은 할 수 없는...

 

“...미지학생? 대답해 보세요.”

 

으잉? 이게 무슨 소리지?

 

내내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가 미지는 자기 이름이 불리자 화들짝 놀랐다.

 

오늘 미지는 다른 날과는 다르게 교실의 맨 뒷줄에 앉아서, 책상에 코를 박을 듯이 몸을 숙이고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상샘과 아이들의 시선이 미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완전 위기였다.

 

미지는 자리를 정리하는 척하며 슬쩍 폰의 전원을 끄고는,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옆눈으로 단비를 쳐다 보았다. 이 상황을 해결할 무슨 도움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비는 미지의 당황해 하는 눈길은 전혀 모른 채, 소설 학습지에다 노란색 색연필로 박박 낙서나 하고 있었다. 아놔, 진짜... 이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기집애. 으이그, 이걸 짝꿍이라고... , 짝꿍!

 

그제서야 미지는 리상샘이 짝꿍끼리 얘기해서 소설에 대한 토론주제를 정하고 같이 이야기 해 보자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 때도 리상샘의 말을 귀로만 듣고는, 요것만 보고, 요것만 보고 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 이런...

 

이건 사고였다. 이건 정말 의도하지 않게 일어난 순전한 사고였다. 미지는 정말 이 소설수업에 열심히 참여할 생각이었다.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라는 제목이 특이해서 미지는 점심시간에 이 소설을 한 번 읽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이냐고 물으면 대강 말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리상샘과 아이들이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미지학생, 빈스토크가 왜 비난을 받아야 하죠?”

 

리상샘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땐 가벼운 연기가 더 필요했다. 10여년 학교 생활에, 조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연마했던 필살의 연기력으로, 미지는 벌써부터 같이 고민하고 있었다는 듯이 찡그린 표정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며, 미지도 굉장히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리상샘에게 질문을 다시 정리해 달라고 말했다.

 

좋아요. 그럼,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죠. 그러니까, 이 소설의 주인공 민소는 폭격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격추되어 죽을 위기에 있지요. 그런데 빈스토크 방위군은 민소를 구하러 가지 않아요. 민소가 수행한 임무는 선제공격을 금지한 국제법을 어기는 불법적인 비밀임무였기 때문이지요. 만일 그를 구하기 위해 구조작업을 펼치면 빈스토크가 불법적인 공격을 명령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겠지요. 이 부분을 근거로 많은 학생들이 빈스토크를 비난했어요.”

 

, 그래, 민소, 기억난다. 타클라마칸 사막에 추락했지. 그래, 국제법, 아까 그걸로 검색도 했었어. 그거라면 대답도 할 수 있지. 그런데, 그래서, 질문이 뭐지?’

 

미지는 리상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검색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자 되려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리상샘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하는 자신을 상상하기까지 하면서, 미지는 리상샘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런데 혜민이는,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비밀임무를 수행해야 할 때가 있을 수 있고, 어떤 병사가 그것을 이미 다 알고 그 임무를 수행한 것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빈스토크군은 민소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빈스토크군이 민소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과 민소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 중에서, 미지학생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 ... 선택하라구요?

 

순간, 미지는 머리 속이 하얘졌다. 분명 한 번 읽은 소설이라 대충 무슨 이야기인가 알기는 하겠는데, 입장을 선택하라니, 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라니. 그런 걸 생각하며 소설을 읽지는 않았다. 그런 걸 생각하며 검색을 한 것도 아니었다. 아까 잠시나마 솟았던 자신감은 쨍그랑 부서지고, 귀밑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 하는 불쌍한 여고생만 남았다.

 

“..., 저기... 그게...”

 

리상샘은 그런 미지를 보다 빙긋이 웃고는 말했다.

 

미지학생, 스마트폰이 참 대단하긴 해도, 결국 질문하고, 선택하고, 상상하는 그 힘까지 스마트폰이 대신할 수는 없어요. 그걸 잊지 말고, 잠시, 서 있는 채로, 스스로 질문하고, 선택하고, 상상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주길 바래요. 먼저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다시 미지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볼께요.”

 

리상샘의 말은 차분했지만, 미지는 전혀 차분해지지 않았다. ...이런 쪽팔림이라니...

 

미지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괜히 옆에 앉은 단비를 흘겨 보았다.

 

어느 새 단비는 아까 그 박박 낙서하던 학습지를 곱게 반으로 접어 놓고는 뭔가 열심히 읽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아놔, 진짜, 이 기집애가 의리 없이 자기만 살겠다고...

 

하지만 단비한테 뭐라 할 상황이 아니었다. 단비는 원래 이런 수업에 집중을 잘 못하는 애였다. 단비한테 오늘 그냥 옆에 앉아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던 것도 미지였다. 이건 분명 미지의 책임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미지는 선 채로, 다시 소설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빈스토크라는 도시가 있다. 가로가 2키로, 세로가 3키로에 높이가 674층이란다. 엄청 거대하고 화려한 이 건물에 50만명이 살고 있다. 이 도시 안에는 군대도 있고, 의회도 있고, 인공위성 제작과 서비스라는 주요 산업도 있어서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라 할 만 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철저하게 자본주의화 된 곳이어서, 이 건물 안의 모든 공간과 시간은 돈이 있어야 이용할 수 있었다. 돈이 없으면 살기 어려운 거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빈스토크는 그게 유난히 심한 곳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이 소설의 남주인 민소였다.

 

사랑하는 연인 은수가 빈스토크에 있는 인공위성 회사에 입사하면서 연락을 끊자, 민소는 군대에 들어가 해군 파일럿을 지원한다. 빈스토크는 시민권이 없으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빈스토크 방위군의 경력이 있으면 빈스토크 영주권을 얻는데 아주 유리했다. 민소는 은수와 다시 만나 함께 살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민소가 빈스토크군의 정규군이 아니라 빈스토크 해군에 고용된 방위업체의 비정규직 파일럿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 제대하기 6개월 전에 민소가 폭격임무를 맡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소설의 내용을 정리하자, 미지의 머리 속에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 ... 그런데 가만있어 봐. 비정규직이라고? 빈스토크 해군은 이런 어렵고 위험하고 중요한 임무를 왜 비정규직 파일럿에게 맡긴 거지?’

 

 

타클라마칸과 배달사고

 

선생님, 이건 정말 국가가 비겁해요. 민소는 비정규직 파일럿이었어요. 어찌 됐든 정규직보다 불안한 자리이고 언제든 짤릴 수 있는 자리라고요. 혜민이 말대로 그게 정말 중요한 임무고 필요한 임무라면 정규직 파일럿에게 시켜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수정학생의 말도 맞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임무를 맡아서 수행하겠다고 한 것은 민소잖아요. 그럼 둘 다 합의했으면 문제 없는 거 아닌가요?”

 

선생님, 그건 비겁해요. 합의라는 게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해야 합의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의 약점까지 이용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약속을 하게 하는 건 합의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건 비정규직이라는 약점을 이용해서 써먹고는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은 지지 않는 걸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역시 수정이였다. 미지가 찾아낸 질문이 미지만 찾아낸 질문은 아니었나 보다. 때마침 비정규직이라는 민소의 신분에 대해서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수정이는 간결하고 명확한 정리로 선생님의 논리를 차근차근 반박하고 있었다. 다들 수정이의 발표에 공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지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빈스토크의 헌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뭔가 말이 안된다는 느낌은 드는데, 뭐라 딱 말할 수는 없어서 미지는 좀 갑갑하기도 했다. 리상샘이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그러니까 수정학생은 빈스토크군의 결정이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법률적으로도 애초에 계약이, 그러니까 합의가 성립되지 않는 걸로 봐야 한다는 것이군요. 또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 거기, 손 들은 학생. 3반 연미학생 맞죠? , 이야기해 주세요

 

저기... 저희는 빈스토크의 헌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요, 빈스토크 헌법에는 입주자와 방문자를 모두 보호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사실 빈스토크군은 입주자만 보호하고 있어요. 그렇게 따지면 민소도 일단은 빈스토크의 방문자라고 할 수 있는데, 빈스토크군은 입주자나 자기들 입주한 기업의 이익만 보호하려고 하지 방문자도 보호하려고는 안한 거 같거든요. 그러니까 헌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거죠.”

 

맞아요... 어머!”

 

엉겁결에 나온 말이었다. 순간 다들 좀 놀라서, 리상샘과 친구들의 시선이 한번에 미지를 향했다. 그리고 당황하는 미지의 모습을 보자 다들 하하하 하며 웃고 말았다. 다시 또 얼굴이 빨개지다가, 미지도 자기가 한 행동이 좀 어이가 없어서 나중에는 같이 웃었다. 리상샘이 말했다.

 

아고, 미지 학생, 미안해요. 이렇게 존재감이 확실한 미지학생을 제가 잠시 잊고 있었네요. 덕분에 우리 수업이 더 명랑해 졌네요. 좋아요, 미지학생. 할 말이 있는 거죠? 발표해 주세요.”

 

미지는 이 우스꽝스런 상황에 계속 웃음이 나서 마음을 고르지 못하다가, 겨우 진정하고 리상샘을 보며 말했다.

 

하하, 흠흠. . , . 발표하겠습니다. ... 저는 빈스토크군이 민소를 구하러 가지 않을 거라고 봐요. 왜냐하면 빈스토크는 애초에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가 아닌 거 같아요. 오로지 돈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이 소설에 나오는 병수와 아내도 그래요. 병수의 아내는 남편과 같이 살지도 않으면서, 병수에게 화목한 아내의 모습이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서 완벽하게 화목한 부부를 연기하고, 그게 끝나면 다시 집을 나가버리잖아요. 화목한 부부라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서 어떤 이익을 얻는 거겠죠. 안정된 수입일 수도 있고, 대단한 명예일 수도 있고요. 그것 때문에 사랑하는 척 하는 것이구요. 빈스토크는 행복해 보이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만 신경쓰는 껍데기 도시 같아요.”

 

미지의 발표가 끝나자, ~~하는 소리가 교실에 울리더니 다시 까르르 하는 웃음이 아이들 사이에 번졌다. 막 당황한 모습으로 웃겨 주다가 미지가 차분하게 정리된 발표를 하자, 그 의외의 모습이 그 자체로 아이들을 좀 웃겼던 것이다.

 

미지도 뭔가 좀 쑥스럽기도 하면서, 또 뭔가 해 낸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같이 웃었다. 그렇게 다같이 웃고 나서 다시 고요함이 찾아올 때 쯤, 리상샘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하, 미지학생. 고마워요.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제 앉아도 좋아요. ... 하지만 빈스토크에는 파란 우편함이 있잖아요. 이 우편함은 순전히 돈이 아닌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죠.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이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파란 우편함에 자기 층의 주소가 적힌 편지가 있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갖다 주잖아요. 이건 이익과 상관 없는, 아주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소설 속에서 병수도 이걸 근거로, 빈스토크가 그래도 인간적인 도시라고 홍보하기도 하고요. 배송 성공률이 94%나 된다고 했죠. 그렇다고 하면 빈스토크를 그냥 껍데기 도시라고 할 수는 없을 거 같은데요. , 연미학생?”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 파란 우편함도 개인에게 책임을 맡긴 것이지 빈스토크가 책임을 지지는 않죠. 거기 경고문에도 써 있잖아요. 빈스토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요. 민소의 편지가 은수에게 배달되지 못한 것도 병수라는 한 사람이 편지를 가져갔다가 잊어버려서 였잖아요. 물론 병수가 그것에 대해 책임을 느껴서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결국 은수를 찾아내기도 하지만, 어쨌든 개인만 책임을 느낄 뿐, 빈스토크라는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죠.”

 

2반 선경이가 손을 들었다.

 

저희는 이 소설에서 자꾸 닳아 없어진다’, 혹은 풍화되었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걸 이야기했는데요, 이 표현들이 왜 이렇게 자꾸 반복되는 건지 저희끼리 이야기할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지금 발표를 들으니까 좀 이해가 된 거 같아요. 민소가 은수를 보낼 때, 병수가 아내의 빈 방에서 아내의 흔적을 떠올릴 때, 이 말들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이게 사람들의 관계를 말하는 거 같아요. 빈스토크는 사람들이 완전히 개인화 되어서 사람들의 관계가 다 메말라 버린 거죠. 그래서 빈스토크는 사막처럼 되 버린 거에요.”

 

타클라마칸처럼?”

 

순간, 미지의 팔뚝에 소름이 올랐다.

 

, . 타클라... ? 어머, 맞아요, 그래요. 어머머, 타클라마칸 사막처럼요! , 그러니까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라는 이 제목에서 타클라마칸은 빈스토크를 말하는 걸 수도 있죠. 우와! 선생님, 저 방금 소름 돋았어요!”

 

선경이의 외침을 따라 다른 아이들도 어머, 어머, 어머머머를 연발하면서, 소매를 걷어 팔에 난 소름을 확인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러나 미지는 그렇게 같이 웃으며 법석을 떨 수도 없이, 팔에서 그치지 않고 등줄기까지 뻗어나가는 소름에 순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미지의 머리 속에서, 친구들의 이야기가 멈추지 않고 이어져서, 뭔가 퍼즐이 다다닥 맞춰져 들어가는 느낌에 온 몸이 찌릿했던 것이다.

 

타클라마칸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배달사고도 있었다.

 

민소가 추락한 곳은 타클라마칸이었다. 그런데 민소는 폭탄을 떨어뜨리고 오는 임무를 수행하다 사고가 난 것이므로, 일종의 배달사고라 할 수 있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병수가 민소의 편지를 은수에게 제 때 배달하지 못한 것은 배달사고였다. 그런데 병수는, 또 은수와 민소는, 방금 애들이 이야기한 내용을 근거로 하자면, 인간적인 관계가 메말라 버린 사막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다들 외롭고, 그립고,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그 가득한 마음의 배달사고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들, ‘타클라마칸에서, ‘배달사고를 겪고 있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라는 제목은, 이 소설의 모든 사건을 압축하고 있었다. 세상에... 아놔, 정말... 이런 변태같은 소설가들 같으니라구...

 

 

우리를 구하는 것

 

선경학생, 고마워요. 다른 발표한 친구들도 모두 고맙습니다. , 그렇지요. 빈스토크에 대한 우리의 논의가 점점 더 깊어지고 풍부해 지는 거 같아서 정말 좋습니다. 여러분의 관찰력과 논리가 더 날카로워지고 명확해진 것도 참 좋아요. 이젠 여러분들이 얼굴이나 몸매만이 아니라 뇌까지도 섹쉬해 지는 거 같아서 정말정말 좋아요.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정말 기쁩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의 근원은 저의 잘생긴 외모 때문이겠지만요. 하하.”

 

아이고... 잘 나가다가 뜬금 없이 또 시작된, 저 근본도 논리도 없는 리상샘의 외모 개그에 아이들이 정말 몹쓸 말을 들었다는 듯이 온갖 표정으로 얼굴을 찌뿌리며 어~~~ 하는 소리를 냈다.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한 표정들을 보였지만 물론, 진심으로 불쾌해 하는 아이는 없었다. 사실은 다들, 리상샘이 우리를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름, 뿌듯해 하고 있었다.

 

우아.. 이 열렬한 환호,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될 시간인데요,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지요. 여러분은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건 무슨 어려운 해석이 필요하거나 그런 부분이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좌아~발적으로 하도록 하죠. , 그럼 혜민학생부터 시작해 보죠. 하하.”

 

리상샘이 웃으며 좌아~발적으로, 자기 왼편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혜민이를 불렀다. 혜민이는 이게 뭐야~ 싶은 표정이긴 했지만, 역시 같이 웃고 있었다. 혜민이가 말했다.

 

.... 다들 그랬을 거 같은데, 일단 되게 감동적이었어요. 국가가 구조를 포기한 사람을 수 십 만의 사람들이 함께 구했다는 게요. , 물론, 그 사람들이 다 같이 타클라마칸에 간 것은 아니지만, 20만 개로 나눠진 타클라마칸의 실시간 인공위성 사진을 그 사람들이 다 같이 인터넷으로 찾아본 거잖아요. 그게 뭔가, 좀 감동적이었어요.”

 

맞아요. 특히나 마지막에 그... 얼마더라?”

 

, 연미학생, 이백칠십칠만 사천팔백육십칠, 이지요.”

 

, 맞아요 선생님. 그 이백칠십만.. , 그게 넘는 그 접속자 수가 나왔을 때, 완전 감동 먹었어요.”

 

, 좋습니다. 그랬군요. 그럼 다음은 지원학생? 이야기해 주세요.”

 

... ... 저는, 은수의 편지가 좋았어요. 민소는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이고, 은수는 지금 결혼할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자기 때문에 민소가 그렇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그래서 그 사람을 구하려고 편지를 쓴 게, 그 내용이, 좀 안쓰럽기도 하고, 괜히 고맙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쨌든 그 편지가 파란우편함으로든, 인터넷으로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그게 사람들을 움직인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편지를 잘 써야겠구나.”

 

와하하... 순간, 지원이의 말에 아이들이 한번에 웃었다. 미지도 내내 조용히 듣다가 편지를 잘 써야겠구나하는,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좀 엉뚱하게 들린 지원이의 말에 같이 웃었다. 하여간 이 엉성한 얼음공주,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미지는 밝은 분위기에 용기가 나서 손을 들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소설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좋았어요. 어쨌든 결국 민소를 구한 거잖아요. 민소가 막 몸도 못 움직이고, 의식도 잃고, 점점 죽을 거 같다가 마지막에 헬기소리를 듣는 장면이 나와서 진짜 다행이었어요. 진짜 그렇다니까요. 인터넷으로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구요.”

 

순간, 리상샘의 눈빛이 고요해 졌다.

 

다들 미지에게 공감하는 듯한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뭔가 차갑고, 뭔가 더 날카로워진 느낌으로, 리상샘이 고요하게 미지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 미지학생. 민소가 정말, 구조가 되었나요?”

 

아니,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말하는데 그게 왜 당연하냐고 물으시면 제가 어떻게... , 그래, 이거. 미지는 소설의 뒷부분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여기에 있잖아요. ‘멀리서 하느님의 사자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신의 사자가 내는 소리가 그의 귀에는 어쩐지 HH-60G의 엔진 소리처럼 들렸다.’ 분명히 민소는 헬기 소리를 들었다고요. 그럼 구조된 거 아닌가요?”

 

두 개의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민소는 지금 의식이 왔다갔다 하는,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 상황에, 민소는 엔진 소리처럼들렸다고 했지요. 환청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요. 둘째, 설령 그것이 헬기라고 해도, HH-60G가 빈스토크군의 헬기이거나 민소를 구하기 위한 빈스토크의 민간헬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 헬기는 적국인 코스모마피아의 것일 수도 있지요.”

 

아니 이 사람은 대체, 뭐가 그렇게 베베 꼬여서, 도대체가 해피엔딩이란 걸 배겨내지 못하는 무슨 심각한 상처라도 있는 건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일도 왜 들춰내서 괜히 사람 기분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드는 건지, 그것도 하필 미지가 기분 좋게 발표할 때 이렇게 찬물, 아니, 찬물로는 부족해, 완전 딴딴한 얼음덩이를 면상에 대놓고 날리는 이런 시츄에이션을 만드는 건지, 미지는 속으로 괜히 마음이 상해서 궁시렁 궁시렁 대고 있었지만, 사실은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가만 생각해 보면 그건,

할 말이 아니었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위기의 상황. 뜨거운 사막에서 아무도 없이, 누군가 구하러 와 줄 거라는 간절한 바람만큼이나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을 거라는 공포에 싸여, 점점 죽음으로 가라앉는 그 절박하고 고독한 민소의 상황을, 정말이지 절박하게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그가 살아남기를 끝까지 절박하게 바랬다면, 우리는 끝까지 치밀해야 했다. 치밀하게, 그의 구조를 확인해야 했다. 확인해서, 그의 생존과 귀환과 다시 시작한 그의 삶을 확인해야 했다. 그걸 할 수 없다면, 그럴 가능성이라도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성급하게 해피엔딩을 말할 일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의 생존을 바랬다면... 그냥 소설 한 편에 너무 지나친 반응일까? 아니다...

 

물론 소설일 뿐이지만, 그냥 소설일 뿐이라면,

우리가 같이 이렇게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미지가 말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한껏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볼까지 발그레해져서, 한참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찾아온 고요함에, 다들 뭐라도 하기가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리상샘은 그 고요함을 충분히 견딘 뒤에, 말을 이었다.

 

이백칠십칠만 사천팔백육십칠. 이 숫자는 물론 중요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일이란 물론, 쉽지 않지요.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인 것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정말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바로 해결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다 해도, 그들 중 누군가는, 우리들 중 누군가는 끝까지, 치밀하게, 그의 생존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지요. 가능하다면, 쓰러진 그를 안고, 호흡을 확인하고, 들것에 실어서 구조헬기에 그를 싣는 일을 우리가 하면 좋겠지만, 만일 그럴 수 없다면, 끝까지, 지켜보는 일은 우리가 해야지요. 소리 지르는 일은 우리가 해야지요. 여기 사람이 있다고. 여기 우리가 구해야 할 사람이...”

 

까똑!”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다들, 이 소리가 어디서 들려 온 것인지 당황해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까똑, 까똑!”

 

이런 세상에... 다시 또 그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미지도 좀 기분이 나빠져서, 이 카톡 알림 소리가 어디서 나는가 하고 돌아봤다가 순간, 깜짝 놀라 멈춰버리고 말았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 그 방향과 거리를 종잡을 수 없었는데, 알고보니 그 카톡 소리는 바로 미지 옆, 단비의 핸드폰에서 나온 소리였던 것이다.

 

미지만큼이나 단비도 놀랐는지, 뭘 어떻게 꾸며도 선머슴아 같은 표정을 지우지 못하던 단비가 이 때 만큼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은 똥그래져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 단비학생. 단비학생인가요?”

 

리상샘의 부름에도, 단비는 말이 없었다. 그냥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냥 굳어버렸다.

 

단비학생. 제가 카톡은 안된다고 했지요?”

 

리상샘은 수업을 시작할 때 말했던 그 규칙을 다시 확인했다.

 

벌입니다. 그 카톡 메시지, 이곳에서, 모두에게, 읽으세요. 큰소리로.”

 

리상샘은 비교적 부드럽게 말했지만, 말하는 마디마디마다 어떤 서운함과 적지 않은 분노가 스며 있었다. 미지는 이 모든 일이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단비만큼이나 몸이 굳어버린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드르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단비가 일어섰다. 단비는 조용히 핸드폰을 들더니 읽기 시작했다.

 

... 세월호 유가족, .. 후원 청소년 모임 노랑나비의 회원님들께 알립니다.”

 

단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단비의 목소리만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

미지의 몸도 떨리고 있었다.

 

세월호라는 말을 듣자마자,

뉴스에서, 라디오에서, 포털에서, 페북에서, 내내 보고 들어서 익숙하던 그 말이,

그 순간만큼은 뭔가, 이 세상에서 처음 들어보는 듯이 너무도 낯설어서,

미지는 온 몸의 신경이 곤두 선 채로 몸이 떨렸다.

미지는 조용히 리상샘을 보았다. 리상샘도 무척 놀란 듯했다.

리상샘의 눈빛도, 떨리고 있었다.

 

“... ..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167일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930일이지만, 167번째 416일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세월호 유가족 분들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분들에게 시간은, 416일에서 멈춰 버렸습니다. 우리는 세월호의 아이들을,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아직, 세월호의 유가족 분들은 구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바라는 서명운동을 내일 오후 6, 시청 앞 광장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회원님들은... ”

 

단비의 목소리가 고요한 교실을 채우고 있었다.

 

미지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교실을 돌아 보았다. 아이들은 다들, 약간은 좀 멍해진 채로, 단비가 읽어내려가는 메시지를 같이 듣고 있었다. 리상샘도, 무슨 일이 일어나던 반짝반짝 빛내던 평소의 그 눈빛은 내지 못하고, 멍하니 교탁 어디를 바라본 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뭔가 좀 슬프고, 뭔가 좀 아프고, 뭔가 좀 부끄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다른 때라면 그게 고소해 보일 텐데, 미지도 지금은,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어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무심코 단비의 책상을 내려다 본 단비는 잠깐, 놀랐다. 그리고 단비에게 좀 미안하고, 좀 부끄럽고, 그리고 그냥 고맙기도 하고 그래서, 괜히 눈물이 날 거 같았다.

 

그곳에는,

반으로 접혀 있던 학습지가 살며시 펼쳐져,

수 십 개의 작은 노란 리본이 모여,

커다란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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