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빨간약, 혹은 대일밴드(완결)

자전거도둑 2014.09.29 11:15

빨간 약, 혹은 대일밴드

김소진, <자전거 도둑>

 

 

1.

 

저기... , 수정아... 같이 가..어멋!!”

 

우당탕탕, 철퍼덕. ... 아야... 아이고 아파라... 아놔, 진짜.

 

오늘도 넘어졌다. 야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멀리 수정이를 본 듯해서 부르며 달려가던 참에 운동장 흙바닥에서 발라당 엎어진 것이었다. 에라이.. 대체 내 무릎관절에는 무슨 중요한 부품이 하나 빠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달팽이관이라던가, 그 귀 속에서 균형을 맞춘다는 그게 뭔가 심각하게 덜 꼬여서 그런 것인지, 유독 자기만 왜 이렇게 자꾸 넘어지는 건가 싶어서 미지는 속이 상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자주 넘어지는 미지였다. 그래서 미지의 무릎과 팔꿈치 주변에는 쓸리고 까진 흉터가 유난히 많았다. 얼마나 자주 넘어졌는지 아기 때는 한 달음에 달려와 미지를 안고 상처를 살피던 엄마도 언젠가 부터는 미지가 넘어져도, 심지어는 무릎이나 팔꿈치에서 피가 베어 나와도, , 그래, 우리 딸, 탁탁 털고 일어 나야지, 아이고 이뿌다, 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하셨다. 미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아예 책가방 안쪽 주머니에, 나중에 요오드 용액이란 걸 알게 된 소독용의 빨간약과 상처에 붙이는 대일밴드를 넣어두고 넘어지거나 다치면 이걸 바르고 붙이라고 엄마는 미지에게 말했다. 글쎄... 그게 서운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넘어져 다치면 빨간약을 바르고 대일밴드를 붙이는 게 워낙 익숙한 일이기도 했지만, 또 그 때 의사놀이를 할 때면 으레 자주 쓰는 장난감이 그것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릎과 손바닥과 팔꿈치가 욱신거리며 쓰라렸다. 어디에 큰 상처가 하나는 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었던 것은 누가 나를 보진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혹시 누가 나의 이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를 봤으면 어쩌지? 아 진짜... 이 쪽팔림을 어쩔 거냐... 일단, 확인을 해야 했다. 미지는 엎어진 채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다. 조금 안심이 되자 미지는 살짝 고개를 들어 좌우로 주변을 살펴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 미지는 다행이란 생각에 마음이 풀리면서도, 아무도 없는 텅빈 운동장에서 혼자 두리번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좀 우스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웃음이 나자 미지는 괜히 마음이 풀어져서 그냥 모든 게 다 용서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왕 엎어진거 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한두 번도 아니고. 엎어진 김에 누워 간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나? ‘상처라는 게...

 

...상처. 미지는 잠깐, 가슴이 싸늘해졌다. 상처. 오늘 방과후 수업 내내 했던 말이었다. 어쩌면 오늘 미지가 넘어진 것도 이 낱말에 마음을 뺏겨서 그랬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지는 멍하니 수업 때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다가 찌릿, 마음 한 구석이 아팠다. 그게 싫어서 미지는 엎어져 있던 몸을 돌려 철푸덕, 가슴을 쫙 펴고 벌렁 누워 버렸다. 수정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생생하게.

 

말 함부로 하지 마. 너는 몰라. 너 같은 애는 진짜 모른다구. 고개 끄덕이지 마. 고개 끄덕이지 말라고. 뭔가 다 알고 있다는 그 표정 그거 정말...”

 

. . . ... 수정이가 마저 못했던 말은 아마 이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미지는 다시 한 번, 아까보다도 더 오랫동안 가슴이 찡..하며 아팠다. 심장 안에서부터 무언가 뾰족한 것이 바깥을 향해 꾸우욱 찌르는 느낌.

 

모둠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이제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일이 전혀 없던 수정이가 갑자기 너무나 흥분해서, 미지에게 뜨겁고 날카로운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미지로서는 전혀 예상을 못한 일이라 더 당황했다. 옆에 앉은 지원이에게 무언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미지가 수정이한테 그런 비난을 받을 만큼 뭘 잘못한 건 아니라고 지원이가 편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지원이는 가만히 있었다. 늘 그러던 것처럼 책상의 어느 한 구석을 멍하니 내려다 보며, 몸을 뒤로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 수정이가 한바탕 말을 쏟아 놓고 흥분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사이, 지원이는 몸을 책상 앞으로 숙이더니 조용히 수정이의 손을 잡았다. 수정이가 지원이를 쳐다보았다. 뜨거운 눈빛이었다. 지원이가 그 눈빛을 그대로 받았다. 차갑지만, 뭔가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수정이가 고개를 돌리며 살며시 손을 빼고는, 그대로 팔짱을 끼고 다른 곳을 보았다. 지원이는 그런 수정이를 말없이 보더니, 고개를 돌려 미지에게 말했다.

 

맞아. 이번에는 미지가 잘못한 거 같아. 네 잘못이 아니지만, 네 잘못이야. 그런 말은 미지가 하면 안될 거 같아.”

그런 말이라니.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이라니. 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했다고. 내가 수정이에게 한 말은 늘 하던 말이잖아. 어려운 말도 아니고, 나쁜 말도 아니었어. 비난하는 말도 아니고 조롱하는 말도 아니었어. 당연히 욕도 아니었지. 그게 대체 왜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말이야?

 

이해해.”

 

그게 미지가 한 말이었다. 어떻게 그 말이 그렇게 화를 낼 말이란 것인지 미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럽고, 그래서 더 화가 나서 미지는 속으로 속상한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말도 내뱉지는 않았다. 왠지 지금 이 자리에서는 잠시 멈추는 게 필요할 거 같아서, 미지는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그 말들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그리고 방과후수업이 끝나고, 책상에 앉기는 했는데 도무지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야자시간을 보내고 나서, 미지는 그게, 그러니까 잠시 멈추기로 하자했던 그 마음만이, 오늘 자기가 한 말과 행동 중에 유일하게 잘 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뭔가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더 들었다.

 

미지는 하늘을 보았다. 차가운 밤이었다. 맑은 밤이기도 했다. 오늘따라 도시답지 않게 별이 빛났다. 오늘 읽었던, 그래서 오늘 우리를 싸우게 했던 소설이 다시 생각났다.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이었다.

 

 

여자의 유혹

 

오늘은, 쌕쉬한 소설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소설을 나눠주며 리쌍샘은 오늘따라 왠지 능글능글, 무언가 기름진 눈빛으로 약간 들떠 있었다. 자기가 아는 중에 가장 섹시한 소설이라고 했다. 섹시한 소설이라니, 이 사람이 아무리 엉뚱하다고 해도 멀쩡한 여고생들을 데려다 놓고 무슨 야설을 보여주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여고에서는 남선생님들이 멀쩡히 잘 지내다가도 말 한 마디, 행동 한 번 잘못하면 그대로 변태로 찍혀서 어디 다른 학교로 갈 때까지 아주 죽을만치 고생하게 된다는 걸 혹시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미지는 좀 어이가 없으면서도 걱정이 되기도 하고, 또 조금은 두근두근해 하면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서미혜라는 여자가 있다. 에어로빅 강사란다. 아마도 늘씬하고 예쁠 테지. 소설에서도 서미혜의 모습이 나오는데, 흰 남방에 타이즈를 입고, 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자전거를 탔단다. 세상에, 이 소설이 나온 게 1995년이라던데, 그 때면 지금보다 20년 전인데, 지금 한참 유행인 하의실종 스타일을 그 때 벌써 하고 다녔다니, 정말 대단하다. 미지는 얄쌍하고 비교적 가느다란 상체에 비해 하체가 좀 굵었다. 무릎의 자글자글한 상처 때문에 스타킹이 없으면 스커트는 왠만하면 입지 않게 되었고, 게다가 느낌 탓인지, 다른 애들보다 스타킹이 더 꽉 껴 보이는 거 같아서 그것도 별로였다. 스키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미지는 핏은 좀 사는데, 약간 헐렁한 바지만을 골라서 입었다. 그럴 때마다 다리선이 예쁜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그런데 서미혜는 그 차림으로 자전거를 탄다고?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이 여자는 김승호라는 남주네 아파트 윗층에 사는데, 이 남자의 자전거를 훔쳐 탔다가 매번 다시 갖다 놓는다. 그리고 김승호와 퇴근길에 만나서 술 한 잔을 한 며칠 후에 김승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일단 명분은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같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낯선 남자를 초대해 놓고, 이 남자가 올 것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서미혜는 김승호가 올 시간에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에어로빅 타이즈를 입고... ... 그건... 좀 민망하지 않나? , 대담한 여자일 수도 있지. 근데 그 다음은 더 이상하다. 집이 엉망이라고 하면서 뭔가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알고 보니 저녁식사도 다 준비해 놓고, 술도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이 여자, 샤워를 한다. 샤워를 했다고?

 

그래, 샤워를 했다. 만난 지 고작 두 번 밖에 안되는 낯선 남자를 집 안에 들여 놓고, 서미혜는 샤워를 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자고 하더니 커텐을 치고, 불을 끄고, 김승호의 옆에 앉아 과일을 깎는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가는 김승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이건 뭐지? 내가 이상한 건가? 미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름 명랑하고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하는 미지도 이런 행동은 감히 상상이 안되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정말 서미혜가 실제로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남자를 꼬시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자, 뭐지?

 

김승호를 보고 첫눈에 반했을 수도 있지.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세상에는, 있잖아?”

 

지원이 네가 왠일로 그런 로맨틱한 말을 다 하냐. 하지만 난 뭔가 아닌 거 같애. 첫눈에 반한 사람치고는, 글쎄.. 뭔가 너무 치밀해. 김승호의 윗집에 살면서, 김승호의 자전거를 훔쳐 타면서, 서미혜는 김승호가 어떤 사람인지, 직업이 뭔지, 언제 퇴근하는지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 게다가 자전거, 그 자전거를 그렇게 탔다가 갖다 놓을 수 있다는 건 김승호가 잃어버렸다는 그 자전거 열쇠를 어디서 주웠다는 건데... 뭔가 이상해. 이건 반한 게 아니라, 뭔가 작업 같은 느낌이 나.”

 

그래, 혜민이 말이 맞아.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야? 이거 완전 꽃뱀이잖아. 완전 남자한테 꼬리치는 게...”

 

아니 뭐, 꽃뱀까지는 아니고...”

 

미지의 말을 듣다 뭔가 표정이 굳어진 수정이가 미지의 말을 끊고 이야기를 꺼냈다.

 

서미혜가 김승호를 유혹하고 있다. 이건 맞는 거 같아. 하지만 꽃뱀이다, 이건 아닌 거 같아. 꽃뱀이라 하면 남자를 유혹해서 무언가 돈이나 권력 같은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해야 하는데, 서미혜는 그런 모습은 없잖아.”

 

그래도 하는 걸 보면 꽃뱀이잖아. 분명히 뭔가가 있어. 자기 예쁜 거 이용해서 남자들 비위 맞춰 가지고 꼬시는 이런 여자들, 뻔하다구.”

 

미지의 말에 수정이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혜민이가 나섰다.

 

아니, 그래도 수정이가 정리한 건 알아봐야 할 거 같아. 서미혜가 굳이 자전거를 가지고, 이렇게 치밀한 과정을 거쳐서 남자를 유혹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말야. 지원이 넌, 아직도 사랑이라고 생각해?”

 

글쎄... 아닌 것도 같네. 그럼 이유가 뭔데?”

 

아마도 오빠 때문일 거야. 어릴 때 자전거를 잘 탔다가 간질 발작이 나서 벽장에 가둬져 키워졌다는 그 오빠. 소설 뒷부분에 서미혜가 자기 오빠를 죽인 이야기를 하잖아. 뭐 자기 손으로 죽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서미혜가 자기가 오빠를 죽였다고 느끼고 있다는 거야. 그게 죄책감이 돼서 그걸 어떻게 속죄해 보려고 그러는 거지.”

 

말도 안돼. 수정아, 확실히 하자구. 서미혜가 죽였다고 느끼고 있다고 하면 안돼. 서미혜가 죽였다구. 2주 동안 오빠를 벽장에 가둬 놓고 밥 한 끼 안줬다잖아. 그건...”

 

서미혜가 가둔 건 아니고, 가둬 놓은 건 엄마고, 서미혜는 하루에 밥을 한 번씩 주기로 했었지. 그걸 안했을 뿐이야.”

 

어쨌든. 엉덩이나 궁뎅이나 마찬가지지 뭐. 그건 살인이야. 이건 명백히 살인이라구. 서미혜는 자기 오빠를 죽였다고. 존속살인은 중죄야. 그래 놓고 나중에야 그걸 속죄하겠다고 자전거로 남자를 꼬신다고? 말도 안돼. 이건 뭐, 거의 미쳤다고 봐야지.”

 

미쳤다고 봐야지, 라는 미지의 말에 수정이의 눈빛이 꿈틀, 했다.

 

 

죄책감이라는 상처

 

수정이가 뭔가 말을 더 하려는데, 리쌍샘이 리듬을 타며 집중하는 박수로!’라고 하셨다. 첫수업을 시작하는 날, 리쌍샘이 부탁한 약속이다. 토론을 하다 보면 이야기에 너무 몰입하다가 수업진행이 안될 수도 있으니, 리쌍샘이 집중하는 박수로!’라고 말하면 우리가 박수를 세 번 치면서 선생님을 봐야 하는 것이다. 아이고, 세상에. 그 유치한 규칙을 리쌍샘은 되게 진지하게 소개해서 더 웃겼는데, 이게 또 의외로 수업을 하다 보니 꽤 괜찮았다. 박수를 몇 번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리쌍샘한테로 시선이 모아졌던 것이다.

 

, 이렇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쉬, 사람은 잘 생기고 봐야 하는 군요.”

 

~~~~ 야유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가 아이들의 입에서 동시에 새어 나왔다. 그 소리에 다들 웃음이 나서 더러 깔깔대기도 했는데, 리쌍샘이 함께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모둠토의를 하면서 이미 많은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눈 거 같은데요, 서미혜의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한, 무언가 급하고 과잉된 행동의 원인을 살피는 것이 먼저 중요합니다. 먼저, 서미혜와 김승호의 스킨쉽이 어디까지 갔는지, 아는 사람?”

 

이 소설에 스킨쉽이 나와요?”

 

놀라며 크게 말한 7반 연재의 너스레에 아이들이 꺄아악 하며 웃었다. 그리곤 다들 소설을 다시 읽어보려고 하던 때에 갑자기 혜민이가 말했다.

 

가슴이요!”

 

아이들이 다시 꺄아악 하며 술렁였다. 다들 혜민이를 돌아보았다. 혜민이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소설 학습지 10쪽에 나와요. <그때 내 손아귀 안으로 도톰한 살덩이가 한가득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거 맞죠?”

 

, 맞아요. 혜민이가 의외로, 이런 야한 부분을 잘 찾아 내는군요.”

 

리쌍샘이 싱긋 웃으며 혜민이를 보았다. 혜민이가 아까보다 얼굴을 더 붉히며, 같이 싱그레 웃었다.

 

. 혜민이가 말한 부분을 보면, 김승호가 분명 서미혜의 가슴을 만진 것이 맞는 거 같아요. 그 전에 김승호는 서미혜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설마 그 도톰한 살덩이가 서미혜의 이두근은 아니겠죠. 아니, 이 사람, 에어로빅을 제대로 했는데?, 이런 건 아닐 거에요.”

 

아이들이 다시 한 번 웃었지만, 교실의 공기가 뭔가 팽팽해 지고 있었다. 잠깐씩 딴짓을 하던 아이들도 얼굴이 발그레 해 져서 다들 리쌍샘에게 완전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에요. 서미혜는 김승호라는 이 남자가, 이제 만난 지 두 번 밖에 되지 않은 이 남자가 자신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저항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오빠 이야기를 하지요. 그러니까, 서미혜는 그 긴장된 순간에조차 오빠를 생각한 것이죠. 아니, 어쩌면, 오빠 때문에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났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럼, 대체 오빠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길래 그러는 걸까요? 이걸 모둠토론으로 하..”

 

죄책감이요.”

 

수정이의 갑작스런 대답에 리쌍샘이 약간 당황해 하며 말했다.

 

우와, 이런, 수정학생. 벌써 찾았군요. 고마워요. 하지만 근거를 찾아야죠. 소설에서 어떠..”

 

사진이요. 서미혜는 자신이 오빠를 죽였다고 생각했어요. 그것 때문에 가출도 했고요.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빠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걸 보면 오빠를 잊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수정이의 대답은 시원하다기 보다, 뭔가 점점 당돌해지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걸 느낀 게 미지만은 아니었다. 리쌍샘도 표정이 심각해 지고 있었다.

 

수정학생. 잘 찾아냈어요. 하지만 아직 궁금한 게 있어요. 서미혜는 오빠를 혐오스러워 했죠. 간질 발작을 한 이후에 오빠에게 뒷마당 산책을 시키는 건 서미혜가 할 일이었어요. 그 때도 서미혜는 오빠를 혐오스러워했죠. 그러다가 그 체력장 사건이 있었죠. 체력장 때문에 피곤해서 깊이 잠들었다가 갑갑해서 깨 보니, 오빠가 서미혜의 몸을 누르고 있었죠. 옷은 다 벗겨진 채로. 알고 있죠?”

 

“...

 

누가 봐도 오빠를 혐오해도 될 만한, 충분히 충격적인 사건이에요. 그런데 서미혜가 왜 죄책감을 갖는 거죠?”

 

오빠가 잘못한 건 맞아요. 분명히 오빠는 잘못했죠. 하지만 서미혜는 오빠가 잘못은 했지만, 죽을 만큼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 때는 어려서 그런 행동을 했지만, 그래서 오빠가 죽었지만, 분명히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서미혜가 가지고 다니는 그 사진도 오빠의 흉칙한 모습이 아니라, 간질 발작이 일어나기 전의 예쁜 사진이라고 했잖아요. 서미혜는 그걸 기억하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더 죄책감이 커지구요. 자전거도 마찬가지에요. 자전거로 자꾸 남자를 유혹하는 것도 오빠를 대신할 사람을 찾는 방법인 거죠. 자전거로 오빠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서 오빠에게 못해주었던 것을 대신해 주려는 거죠. 말도 안되는 행동이지만, 말도 안되는 행동으로라도 덜어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에요. 죄책감 때문이에요.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이 죽었을 때, 죄책감이 더 커지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선생님은 문학선생님이면서, 서미혜의 감정이 그렇게 이해가 안되요?”

 

이건 아니었다. 수정이가 아무리 평소답지 않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수정이가 말을 하다가 저 혼자 흥분해서 더 감정이 격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한테, 다구나 리쌍샘한테 이러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수정이가 잘못하는 거였다. 미지는 더 이상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상처라는 함정

 

수정 학생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어찌되었건 서미혜는 오빠를 죽였어요. 그것 때문에 서미혜가 얼마나 상처 받고,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을지 이해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남자를 노골적으로 꼬시고, 그것도 이 남자가 안되니까 다른 남자를 또 꼬시고 그러는 건 죄책감이 아니라, 뭔가 핑계 같아요.”

 

리쌍샘을 보던 수정이의 눈길이 미지를 향했다. 미지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미혜는 또 다른 남자의 자전거를 타고 김승호 앞을 쌩 지나가죠. 아는 척도 안하고요. 김승호를 사랑했다면 그럴 수는 없을 거에요. 죄책감이건 뭐건 간에, 서미혜는 김승호를 그냥 이용했던 거에요.”

 

미지학생. 발표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명확하지 않은 게 있어요. 서미혜가 다른 남자의 자전거를 훔쳤다고 했는데, 근거가 뭐죠? 김승호에게 한 행동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근거가, 있나요?”

 

리쌍샘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날카로운 눈빛으로, 미지에게 물었다. 수정이의 말을 끊고 수정이의 이야기에 반박할 것만 생각하다가 갑자기 평소답지 않은 리쌍샘의 공격적인 질문을 듣고 미지는 당황했다. 리쌍샘, 나는 선생님 편이라고요, 이게 지금, 어떻게 된...

 

수정학생. 말해 보세요. 서미혜가 또 다른 남자의 자전거를 훔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있나요?

 

그건...김승호가...”

 

김승호는 그날 밤, 서미혜로부터 오빠 이야기를 듣고 뭔가 함정인 거 같다는 느낌에 서미혜의 방에서 도망쳐 나오죠. 그리고 보름 만에 그날, 서미혜를 그야말로 잠깐, 스치듯이 만나죠. 김승호도 그 보름 동안 서미혜에 대해서 새로 알게 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김승호는 서미혜가 다른 남자의 자전거를 훔치고 있다고 이야기 하죠. 그 자전거는 서미혜가 새로 샀을 수도 있고, 빌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옆집 봉구네 자전거를 훔친 걸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김승호의 주관적인 판단이에요. 이 주관적인 판단 이외에 서미혜가 다른 남자를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다른 객관적인 증거가, 있나요?”

 

조용히, 침착하게 말했지만, 리쌍샘의 목소리에는 어떤 날카로운 근엄함이 있었다. 뭔가 더 냉정해 주기를, 뭔가 더 치밀하고 책임감 있게 소설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었다. 미지는 할 말이 없었다. 수정이도, 다른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약간은 다들,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상처 받은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지요. 상처 받은 사람은 대개 너무 아파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외면하거나 도망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자기 마음이 어떠한지도 잘 모르게 되지요.”

 

아이들이 조용했다. 잠시 토론을 따라 격하게 오고갔던 감정 때문인지, 아까처럼 아이들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아까와는 달리 뭔가 진중한 분위기였다. 리쌍샘이 말을 이어갔다.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상처는 어떻게 함정이 되는가?’입니다. 어떤 사람이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지요. 수정이와 미지 학생 덕분에 우리가 순식간에 이 소설의 핵심으로 쑤욱, 들어올 수 있었네요. 고마워요. 그럼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 아니 상처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을 먼저 찾아 보세요. 이 소설에서 그 사람을 찾고, 치유하지 못한 상처로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둠별로 토의해 주기 바랍니다.”

 

리쌍샘을 보기 위해 칠판을 향했던 미지와 수정이는, 다시 마주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혜민이는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미지와 수정이의 얼굴만 계속 살폈고, 지원이는 수정이를 먼 눈길로 지켜보았다. 수정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리해 보면,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김승호야.”

 

그래, 맞아, 그런 거 같지? 뭐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김승..”

 

당연하지.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 서미혜랑 김승호 밖에 없잖아. 서미혜가 아니면 김승호겠지. 당연한 거 아냐? 문제는 이유잖아.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어떻게든 분위기를 수습해 보려는 혜민이의 말을 끊고, 미지가 차갑게 말을 던졌다. 그 때는 미지도 분명히 몰랐지만, 마음은 이미 틀어져서 노골적으로 수정이에게 시비를 거는 투였다. 수정이가 가까스로 참는다는 듯이, 천천히, 또박또박, 미지를 쳐다보고 말했다.

 

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야.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서미혜의 이야기를 빼고는, 나머지 서미혜에 대한 모든 판단은 김승호가 자기 멋대로 한 거야. 그러니까..”

 

그거 누가 몰라? 김승호가 왜 그런 거냐고?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미혜가 자전거 타는 걸 보고 남의 자전거니 다른 남자 꼬시니 그러고 있냐고? 어렸을 때 상처가 뭐? 그런 거 없는 사람도 있어? 다들 다치고 낫고 그런 거잖아. 뭐가 얼마나 무서워서 그렇게 맨날 도망가냐고, 배배 꼬여서. 누구처럼.”

 

정말 위험했다. 이러다가는 뭔가 일이 단단히 날 것 같았다. 혜민이가 어떻게든 둘의 이야기를 끊어 보려고 나섰다.

 

...저기...얘들아? 저기 소설을 보면, 김승호가 무서워 하는 게 딱 하나 나와. 저기, 아빠가 실수로 수도상회에서 소주 2병을 안가져와서 속상해서 막 울다가, 다음에 소주 2병 훔친 거 기억나지? 그 때 저기... 혹부리 할아버지한테 걸려가지구 김승호 아빠가 당황하니까, 김승호가 자기가 했다고 그러잖아. 그리고는 자기 아빠한테 뺨 막 맞고. 그 때 죽는 한이 있어도 에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고 하잖아. 그러니..”

 

그래. 김승호가 정말 두려워 하는 건 아빠가 되는 거야. 자식을 낳을 생각이 없다구. 그런 비참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거지.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게 얼마나 괴롭고 비참한 것일 수 있는지 김승호는 알게 된 거야.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도망갔다? 그래서 그렇게 자기 맘대로 생각하고 서미혜를 돌봐 주지도 않고 도망갔다고? 그게 말이 되냐?”

 

미지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마구 쏘아 붙였다. 아까까지 서미혜를 비난하다가 이제는 김승호를 마구 비난하고 있는 자신이 뭔가 앞뒤가 안맞는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뭐가 어디부터 꼬였는지 오늘따라 사람들이 다들 자기를 외면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수정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째 이야기를 시작할 때부터 꽁한 표정을 짓고는, 내내 미지에게 무언가 감정이 있는 거 같았다. 그 때부터 꼬였다. 왠지 이러면 안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미지는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서운함과 속상함을 어떻게 참을 방법이 없었다. 원래 미지는 이런 애가 아니었다. 미지는 명랑하고 쾌활하고 재밌는 사람이다. 뭔가 원래 자기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에 미지는 더 짜증이 났다.

 

자기랑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더 이해하고 감싸주고 그래야지. , 무슨 드라마나 연애소설 봐도 다 그래. 그런 사람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그러는 게 더 당연한 거야. 자기랑 비슷한 상처를 가진, 정말 예쁜 사람, 그것도 자신의 품에 안기려고 그렇게 애쓰는 사람을 그렇게 보냈다고? 무슨 그런 한심한 사람이 어디 있냐?”

 

, 염미지. 네가 뭘 알아? 네가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이 어떤 지 알기나 해? 누군가를 책임지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는데도, 그게 안되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고, 억울하고, 열받고 그런 걸 니가 이해할 수 있어? ”

 

이해해.”

 

, 뭐라구? 이해한다구?”

 

그 때까지, 그래도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쓰던 수정이가 결국 폭발해 버렸다. 눈물이 그렁그렁해 졌음에도 여전히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눈빛으로, 수정이는 미지를 죽일 듯이 쏘아보며 자신의 말을 조용히 씹어 뱉었다.

 

말 함부로 하지 마. 너는 몰라. 너 같은 애는 진짜 모른다구. 고개 끄덕이지 마. 고개 끄덕이지 말라고. 뭔가 다 알고 있다는 그 표정 그거 정말...”

 

 

대일밴드, 혹은 빨간약

 

어떻게 그 자리를 마무리하고 교실에 돌아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미지는 정신이 없었다. 곧 종이 울려서 자리에 앉아 야자시간이라고 수학책을 펴 놓기는 했는데, 그냥 눈만 문제집을 향하고 있을 뿐 머릿속에서는 내내 아까 전의 상황이 재연되고 있었다.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 그걸 이해하냐고? 그러니까 그게...

 

사실 미지는 이제까지, 무슨 대단한 상처를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고, 아빠는 시청 공무원이셨다. 뭐가 좀 아쉬울 때는 있어도 부족한 것은 없는 살림이었다. 엄마는 아이들의 걱정과는 달리, 미지의 생활에 대해 그리 큰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그럭저럭 공부를 해 내는 탓도 있겠지만 그러기 전부터, 엄마는 약간 거리를 두고 미지가 하려는 것을 지켜보는 편이었다. 아빠는 시청일로 이래저래 바쁘고 몇 년에 한 번은 근무지를 옮겨야 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얼굴을 자주 보며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주말에는 곧잘 여행도 같이 다니고 때로는 엄마를 빼 놓고 아빠하고만 쇼핑을 다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중년에 수트를 멋지게 입은 아저씨가 드레스를 입은 늘씬하고 예쁜 딸과 함께 거리를 걷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너무 멋있었다며 말하곤 했다. 물론 우리는 덤벙한 등산 잠바를 입은 키 작은 아저씨와 하체 두꺼운 청바지 여고생의 조합이란 게 함정이었지만, 미지는 즐거웠다.

 

그래서 미지는, 이 방과후수업을 들으면서 더욱,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넘어져도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는 미지의 성격에서는, 대체 왜 그렇게 일어나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뒹굴뒹굴 대는지 좀 불쌍하긴 한데 이해가 안되긴 마찬가지였다. 갑갑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자고 내가 어디 가서 아픔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숫자 하나를 그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리쌍샘이 미지를 불러냈다. 두 사람은 복도 한 쪽 구석, 계단이 있는 자리에 앉았다.

 

미지야, 아까 수업할 때, 좀 서운했니?”

 

?.. 아니요.”

 

그래... 암튼, 미안하구나. 선생님이 오늘은, 수정이가 많이 마음이 쓰여서 미지한테 좀 거칠게 이야기 한 거 같아서 말야.”

 

아니에요. 이젠 괜찮아요. 그냥... 저도 괜히 마음이 심란해서 그랬어요.”

 

, 그래... 그랬구나.”

 

“ ... 선생님?”

 

?”

 

“...인문학이란 게... 사람들 이렇게 마음 아픈 거 공부하는 거에요?”

 

하하...... ,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서 공부하는 게 인문학이니까.”

 

그렇구나...그럼 전...”

 

미지는 잠시 숨을 멈췄다. 왠지 목소리가 떨리는 거 같았다.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리쌍샘 앞에서는, 더구나 오늘같은 날에는 울고 싶지 않았다. 미지는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선생님, 그런 전, 이젠 인문학 안배울래요.”

 

으응? 아니 왜? 미지같은 인문학 영재가.”

 

아니에요. ... 전 별로 상처 받은 게 없어서요. 다른 사람 아픈 걸 이해하는 게 잘 안되나 봐요. 수정이도 그렇고, 지원이도 그렇고. 사실, 저 걔네들 무슨 일 있는 지 대강 알거든요. 그거 알았을 때, 이 깍쟁이들이랑 떡볶이 먹고 순대 먹고 같이 오밤중에 놀이터에서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그 때서야 듣고, 저 막 펑펑 울고, 같이 울고 그랬거든요. 근데, 너무 미안한 거에요. 저는 그런 상처가 없어서요. 괜히 미안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어디 가서 상처를 받고 올 수는 없잖아요.”

 

미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리쌍샘은 미지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왠지, 그걸 아는 체 하면 안될 거 같아 리쌍샘은 계단 한편의 창문으로 멀리 펼쳐진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거면 돼. 미지야, 그거면 돼. 같이 옆에 있어주고, 같이 울어주면 돼. 미지는 상처가 없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미지같은 사람이 더 필요한 거야. 미지는 튼튼하니까, 누군가 아파서 쓰러졌을 때 도움을 줄 수 있잖아. 곁에 있어주고, 일어나자고 해 줄 수 있잖아. 내가 얼마나 아픈지, 넌 모르잖아, 라고 누가 그러면, 응 맞아요, 그래요, 그래도 당신이 일어나길 바래요. 당신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 같이 걷고 싶어요, 그러면 돼. 우리는 그걸 연습하는 공부를 하는 거야. 언젠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정말 잘 사랑하기 위해서.”

 

...밤이 깊었다. 미지는 누운 채로 리쌍샘의 말을 떠올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글쎄...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미지는 옆에 같이 벌렁 누워 있는 가방을 뒤졌다. 여기 어디 있을텐데... 대일밴드와 빨간약이 아마 이 가방에도 있을 것이다. 어디가 찌져지거나 하는 그런 큰 상처가 아니라면, 이거 두 개만 있으면 별 탈 없이 까진 데가 아물었다. , 여기. 찾았다.

 

미지는 일어나 가로등불이 잘 보이는 스텐드로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오른쪽 무릎이 또 여지없이 깨졌다. 다른 데는 약간 쓸렸을 뿐, 피가 베어나오지는 않았다. 이젠 팔꿈치에도 굳은 살이 베긴 것일까? 쓴 웃음을 지으며 미지가 물티슈를 꺼내 상처를 닦았다. 아팠다. 잠깐이지만, 미지의 모든 감각이 한 순간 무릎에 다 쏠리는 듯했다. 미지는 빨간약을 바르려고 뚜껑을 돌리다가 문득, 멈췄다. 과학시간에 배운 것이 생각났다.

 

인류에게 죽음과 질병의 고통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그것을 획기적으로 막아준 의학의 발전은 대단한 것이었는데, 그 중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하찮게 여겨지는 것도 있다고 했다. 그게 빨간약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종기로 죽는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그 대부분이 종기를 짜고 난 후 항생제를 제대로 쓰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었단다. 그래, 빨간약.

 

그래,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나는 나다. 미지는 먼저 자신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인문학은 시작한다는 말을 기억해 냈다. 그래, 나는 나다. 내가 그 친구들, 그 아픈 마음들, 다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치료해 주지도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 곁의 사람들 몸에 난 작은 상처는 내가 감싸줄 수 있지. 빨간 약을 바르고 후후 불어줄 수는 있지. 곁에 있어줄 수는 있지. 안아줄 수는 있지. 엎어진 김에 누워도 된다고, 다시 일어날 거면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해 줄 수는 있지.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일어나면, 일어나서, 나와 함께 살아간다면, 그런 내 맘을 알아준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나는 빨간약이다. 그것만이라도 괜찮아.

 

상처 난 미지의 무릎 위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다시 또 상처가 쓰라렸다. 하지만 어디가 진짜 아픈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미지는, 다시 상처를 닦고 빨간약을 바르고, 호호 불어서 말린 다음 대일밴드를 붙였다. 두 개를 붙였다. 그래, 이거면 됐어. 미지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언덕배기에 지어진 학교 스텐드에서는 온 시내와 아파트 단지의 불빛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미지는 오늘만큼은 왠지 그 불빛들이 별빛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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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약, 혹은 대일밴드 완성판

자전거도둑 2014.09.28 21:11

빨간 약, 혹은 대일밴드

김소진, <자전거 도둑>

 

 

1.

 

저기... , 수정아... 같이 가..어멋!!”

 

우당탕탕, 철퍼덕. ... 아야... 아이고 아파라... 아놔, 진짜.

 

오늘도 넘어졌다. 야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멀리 수정이를 본 듯해서 부르며 달려가던 참에 운동장 흙바닥에서 발라당 엎어진 것이었다. 에라이.. 대체 내 무릎관절에는 무슨 중요한 부품이 하나 빠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달팽이관이라던가, 그 귀 속에서 균형을 맞춘다는 그게 뭔가 심각하게 덜 꼬여서 그런 것인지, 유독 자기만 왜 이렇게 자꾸 넘어지는 건가 싶어서 미지는 속이 상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자주 넘어지는 미지였다. 그래서 미지의 무릎과 팔꿈치 주변에는 온갖 쓸리고 까진 흉터가 유난히 많았다. 얼마나 자주 넘어졌는지 아기 때는 한 달음에 달려와 미지를 안고 상처를 살피던 엄마도 언젠가 부터는 미지가 넘어져도, 심지어는 무릎이나 팔꿈치에서 피가 베어 나와도, , 그래, 우리 딸, 탁탁 털고 일어 나야지, 아이고 이뿌다, 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하셨다. 미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아예 책가방 안쪽 주머니에 나중에 요오드 용액이란 걸 알게 된 소독용의 빨간약과 상처에 붙이는 대일밴드를 넣어두고 넘어지거나 다치면 이걸 바르고 붙이라고 엄마는 미지에게 말했다. 글쎄... 그게 서운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넘어져 다치면 빨간약을 바르고 대일밴드를 붙이는 게 워낙 익숙한 일이기도 했지만, 또 그 때 의사놀이를 할 때면 으레 자주 쓰는 장난감이 그것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릎과 손바닥과 팔꿈치가 욱신거리며 쓰라렸다. 어디에 큰 상처가 하나는 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었던 것은 누가 나를 보진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혹시 누가 나의 이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를 봤으면 어쩌지? 아 진짜... 이 쪽팔림을 어쩔 거냐... 일단, 확인을 해야 했다. 미지는 엎어진 채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다. 조금 안심이 되자 미지는 살짝 고개를 들어 좌우로 주변을 살펴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 미지는 다행이란 생각에 마음이 풀리면서도, 아무도 없는 텅빈 운동장에서 혼자 두리번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좀 우스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웃음이 나자 미지는 괜히 마음이 풀어져서 그냥 모든 게 다 용서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왕 엎어진거 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한두 번도 아니고. 엎어진 김에 누워 간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나? ‘상처라는 게...

 

...상처. 미지는 잠깐, 가슴이 싸늘해졌다. 상처. 오늘 방과후 수업 내내 했던 말이었다. 어쩌면 오늘 미지가 넘어진 것도 이 낱말에 마음을 뺏겨서 그랬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지는 멍하니 수업 때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다가 찌릿, 마음 한 구석이 아팠다. 그게 싫어서 미지는 엎어져 있던 몸을 돌려 철푸덕, 가슴을 쫙 펴고 벌렁 누워 버렸다. 수정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생생하게.

 

말 함부로 하지 마. 너는 몰라. 너 같은 애는 진짜 모른다구. 고개 끄덕이지 마. 고개 끄덕이지 말라고. 뭔가 다 알고 있다는 그 표정 그거 정말...”

 

. . . ... 수정이가 마저 못했던 말은 아마 이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미지는 다시 한 번, 아까보다도 더 오랫동안 가슴이 찡..하며 아팠다. 심장 안에서부터 무언가 뾰족한 것이 바깥을 향해 꾸우욱 찌르는 느낌.

 

모둠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이제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일이 전혀 없던 수정이가 갑자기 너무나 흥분해서, 미지에게 뜨겁고 날카로운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미지로서는 전혀 예상을 못한 일이라 더 당황했다. 옆에 앉은 지원이에게 무언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미지가 수정이한테 그런 비난을 받을 만큼 뭘 잘못한 건 아니라고 지원이가 편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지원이는 가만히 있었다. 늘 그러던 것처럼 책상의 어느 한 구석을 멍하니 내려다 보며, 몸을 뒤로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 수정이가 한바탕 말을 쏟아 놓고 씩씩거리며 흥분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사이, 지원이는 몸을 책상 앞으로 숙이더니 조용히 수정이의 손을 잡았다. 수정이가 지원이를 쳐다보았다. 뜨거운 눈빛이었다. 지원이가 그 눈빛을 그대로 받았다. 차갑지만, 뭔가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수정이가 고개를 돌리며 살며시 손을 빼고는, 그대로 팔짱을 끼고 다른 곳을 보았다. 지원이는 그런 수정이를 말없이 보더니, 고개를 돌려 미지에게 말했다.

 

맞아. 이번에는 미지가 잘못한 거 같아. 네 잘못이 아니지만, 네 잘못이야. 그런 말은 미지가 하면 안될 거 같아.”

그런 말이라니.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이라니. 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했다고. 내가 수정이에게 한 말은 늘 하던 말이잖아. 어려운 말도 아니고, 나쁜 말도 아니었어. 비난하는 말도 아니고 조롱하는 말도 아니었어. 당연히 욕도 아니었지. 그게 대체 왜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말이야?

 

이해해.”

 

그게 미지가 한 말이었다. 어떻게 그 말이 그렇게 화를 낼 말이란 것인지 미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럽고, 그래서 더 화가 나서 미지는 속으로 속상한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말도 내뱉지는 않았다. 왠지 지금 이 자리에서는 잠시 멈추는 게 필요할 거 같아서, 미지는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그 말들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그리고 방과후수업이 끝나고, 오늘 함께 읽은 소설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 책상에 앉기는 했는데 도무지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야자시간을 보내고 나서, 미지는 그게, 그러니까 잠시 멈추기로 하자했던 그 마음만이, 오늘 자기가 한 말과 행동 중에 유일하게 잘 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뭔가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더 들었다.

 

미지는 하늘을 보았다. 차가운 밤이었다. 맑은 밤이기도 했다. 오늘따라 도시답지 않게 별이 빛났다. 오늘 읽었던, 그래서 오늘 우리를 싸우게 했던 소설이 다시 생각났다.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이었다.

 

 

여자의 유혹

 

오늘은, 쌕쉬한 소설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소설을 나눠주며 리쌍샘은 오늘따라 왠지 능글능글, 무언가 기름진 눈빛으로 약간 들떠 있었다. 자기가 아는 중에 가장 섹시한 소설이라고 했다. 섹시한 소설이라니, 이 사람이 아무리 엉뚱하다고 해도 멀쩡한 여고생들을 데려다 놓고 무슨 야설을 보여주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여고에서는 남선생님들이 멀쩡히 잘 지내다가도 말 한 마디, 행동 한 번 잘못하면 그대로 변태로 찍혀서 어디 다른 학교로 갈 때까지 아주 죽을만치 고생하게 된다는 걸 혹시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미지는 좀 어이가 없으면서도 걱정이 되기도 하고, 또 조금은 두근두근해 하면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서미혜라는 여자가 있다. 에어로빅 강사란다. 아마도 늘씬하고 예쁠 테지. 소설에서도 서미혜의 모습이 나오는데, 흰 남방에 타이즈를 입고, 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자전거를 탔단다. 세상에, 이 소설이 나온 게 1995년이라던데, 그 때면 지금보다 20년 전인데, 지금 한참 유행인 하의실종 스타일을 그 때 벌써 하고 다녔다니, 정말 대단하다. 미지는 얄쌍하고 비교적 가느다란 상체에 비해 하체가 좀 굵었다. 무릎의 자글자글한 상처 때문에 스타킹이 없으면 스커트는 왠만하면 입지 않게 되었고, 게다가 느낌 탓인지, 다른 애들보다 스타킹이 더 꽉 껴 보이는 거 같아서 그것도 별로였다. 스키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미지는 핏은 좀 사는데, 약간 헐렁한 바지만을 골라서 입었다. 그럴 때마다 다리선이 예쁜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그런데 서미혜는 그 차림으로 자전거를 탄다고?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이 여자는 김승호라는 남주네 아파트 윗층에 사는데, 이 남자의 자전거를 훔쳐 탔다가 매번 다시 갖다 놓는다. 그리고 김승호와 퇴근길에 만나서 술 한 잔을 한 며칠 후에 김승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일단 명분은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같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낯선 남자를 초대해 놓고, 이 남자가 올 것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서미혜는 김승호가 올 시간에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에어로빅 타이즈를 입고... ... 그건... 좀 민망하지 않나? , 대담한 여자일 수도 있지. 근데 그 다음은 더 이상하다. 집이 엉망이라고 하면서 뭔가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알고 보니 저녁식사도 다 준비해 놓고, 술도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이 여자, 샤워를 한다. 샤워를 했다고?

 

그래, 샤워를 했다. 만난 지 고작 두 번 밖에 안되는 낯선 남자를 집 안에 들여 놓고, 서미혜는 샤워를 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자고 하더니 커텐을 치고, 불을 끄고, 김승호의 옆에 앉아 과일을 깎는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가는 김승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이건 뭐지? 내가 이상한 건가? 미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름 명랑하고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하는 미지도 이런 행동은 감히 상상이 안되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정말 서미혜가 실제로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남자를 꼬시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자, 뭐지?

 

김승호를 보고 첫눈에 반했을 수도 있지.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세상에는, 있잖아?”

 

지원이 네가 왠일로 그런 로맨틱한 말을 다 하냐. 하지만 난 뭔가 아닌 거 같애. 첫눈에 반한 사람치고는, 글쎄.. 뭔가 너무 치밀해. 김승호의 윗집에 살면서, 김승호의 자전거를 훔쳐 타면서, 서미혜는 김승호가 어떤 사람인지, 직업이 뭔지, 언제 퇴근하는지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 게다가 자전거, 그 자전거를 그렇게 탔다가 갖다 놓을 수 있다는 건 김승호가 잃어버렸다는 그 자전거 열쇠를 어디서 주웠다는 건데... 뭔가 이상해. 이건 반한 게 아니라, 뭔가 작업 같은 느낌이 나.”

 

그래, 혜민이 말이 맞아.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야? 이거 완전 꽃뱀이잖아. 완전 남자한테 꼬리치는 게...”

 

아니 뭐, 꽃뱀까지는 아니고...”

 

미지의 말을 듣다 뭔가 표정이 굳어진 수정이가 미지의 말을 끊고 이야기를 꺼냈다.

 

서미혜가 김승호를 유혹하고 있다. 이건 맞는 거 같아. 하지만 꽃뱀이다, 이건 아닌 거 같아. 꽃뱀이라 하면 남자를 유혹해서 무언가 돈이나 권력 같은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해야 하는데, 서미혜는 그런 모습은 없잖아.”

그래도 하는 걸 보면 꽃뱀이잖아. 분명히 뭔가가 있어. 자기 예쁜 거 이용해서 남자들 비위 맞춰 가지고 꼬시는 이런 여자들, 뻔하다구.”

 

미지의 말에 수정이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혜민이가 나섰다.

 

아니, 그래도 수정이가 정리한 건 알아봐야 할 거 같아. 서미혜가 굳이 자전거를 가지고, 이렇게 치밀한 과정을 거쳐서 남자를 유혹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말야. 지원이 넌, 아직도 사랑이라고 생각해?”

 

글쎄... 아닌 것도 같네. 그럼 이유가 뭔데?”

 

아마도 오빠 때문일 거야. 어릴 때 자전거를 잘 탔다가 간질 발작이 나서 벽장에 가둬져 키워졌다는 그 오빠. 소설 뒷부분에 서미혜가 자기 오빠를 죽인 이야기를 하잖아. 뭐 자기 손으로 죽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서미혜가 자기가 오빠를 죽였다고 느끼고 있다는 거야. 그게 죄책감이 돼서 그걸 어떻게 속죄해 보려고 그러는 거지.”

 

말도 안돼. 수정아, 확실히 하자구. 서미혜가 죽였다고 느끼고 있다고 하면 안돼. 서미혜가 죽였다구. 2주 동안 오빠를 벽장에 가둬 놓고 밥 한 끼 안줬다잖아. 그건...”

 

서미혜가 가둔 건 아니고, 가둬 놓은 건 엄마고, 서미혜는 하루에 밥을 한 번씩 주기로 했었지. 그걸 안했을 뿐이야.”

 

어쨌든. 엉덩이나 궁뎅이나 마찬가지지 뭐. 그건 살인이야. 이건 명백히 살인이라구. 서미혜는 자기 오빠를 죽였다고. 존속살인은 중죄야. 그래 놓고 나중에야 그걸 속죄하겠다고 자전거로 남자를 꼬신다고? 말도 안돼. 이건 뭐, 거의 미쳤다고 봐야지.”

 

미쳤다고 봐야지, 라는 미지의 말에 수정이의 눈빛이 꿈틀, 했다.

 

 

죄책감이라는 상처

 

수정이가 뭔가 말을 더 하려는데, 리쌍샘이 리듬을 타며 집중하는 박수로!’라고 하셨다. 첫수업을 시작하는 날, 리쌍샘이 부탁한 약속이다. 토론을 하다 보면 이야기에 너무 몰입하다가 수업진행이 안될 수도 있으니, 리쌍샘이 집중하는 박수로!’라고 말하면 우리가 박수를 세 번 치면서 선생님을 봐야 하는 것이다. 아이고, 세상에. 그 유치한 규칙을 리쌍샘은 되게 진지하게 소개해서 더 웃겼는데, 이게 또 의외로 수업을 하다 보니 꽤 괜찮았다. 박수를 몇 번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리쌍샘한테로 시선이 모아졌던 것이다.

 

, 이렇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쉬, 사람은 잘 생기고 봐야 하는 군요.”

 

~~~~ 야유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가 아이들의 입에서 동시에 새어 나왔다. 그 소리에 다들 웃음이 나서 더러 깔깔대기도 했는데, 리쌍샘이 함께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모둠토의를 하면서 이미 많은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눈 거 같은데요, 서미혜의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한, 무언가 급하고 과잉된 행동의 원인을 살피는 것이 먼저 중요합니다. 먼저, 서미혜와 김승호의 스킨쉽이 어디까지 갔는지, 아는 사람?”

 

이 소설에 스킨쉽이 나와요?”

 

놀라며 크게 말한 7반 연재의 너스레에 아이들이 꺄아악 하며 웃었다. 그리곤 다들 소설을 다시 읽어보려고 하던 때에 갑자기 혜민이가 말했다.

 

가슴이요!”

 

아이들이 다시 꺄아악 하며 술렁였다. 다들 혜민이를 돌아보았다. 혜민이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소설 학습지 10쪽에 나와요. <그때 내 손아귀 안으로 도톰한 살덩이가 한가득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거 맞죠?”

 

, 맞아요. 혜민이가 의외로, 이런 야한 부분을 잘 찾아 내는군요.”

 

리쌍샘이 싱긋 웃으며 혜민이를 보았다. 혜민이가 아까보다 얼굴을 더 붉히며, 같이 싱그레 웃었다.

 

. 혜민이가 말한 부분을 보면, 김승호가 분명 서미혜의 가슴을 만진 것이 맞는 거 같아요. 그 전에 김승호는 서미혜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설마 그 도톰한 살덩이가 서미혜의 이두근은 아니겠죠. 아니, 이 사람, 에어로빅을 제대로 했는데?, 이런 건 아닐 거에요.”

 

아이들이 다시 한 번 웃었지만, 교실의 공기가 뭔가 팽팽해 지고 있었다. 잠깐씩 딴짓을 하던 아이들도 얼굴이 발그레 해 져서 다들 리쌍샘에게 완전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에요. 서미혜는 김승호라는 이 남자가, 이제 만난 지 두 번 밖에 되지 않은 이 남자가 자신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저항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오빠 이야기를 하지요. 그러니까, 서미혜는 그 긴장된 순간에조차 오빠를 생각한 것이죠. 아니, 어쩌면, 오빠 때문에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났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럼, 대체 오빠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길래 그러는 걸까요? 이걸 모둠토론으로 하..”

 

죄책감이요.”

 

수정이의 갑작스런 대답에 리쌍샘이 약간 당황해 하며 말했다.

 

우와, 이런, 수정학생. 벌써 찾았군요. 고마워요. 하지만 근거를 찾아야죠. 소설에서 어떠..”

 

사진이요. 서미혜는 자신이 오빠를 죽였다고 생각했어요. 그것 때문에 가출도 했고요.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빠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걸 보면 오빠를 잊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수정이의 대답은 이젠, 시원하다기 보다, 점점 당돌해지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걸 느낀 게 미지만은 아니었다. 리쌍샘도 표정이 심각해 지고 있었다.

 

수정학생. 잘 찾아냈어요. 하지만 아직 궁금한 게 있어요. 서미혜는 오빠를 혐오스러워 했죠. 간질 발작을 한 이후에 오빠에게 뒷마당 산책을 시키는 건 서미혜가 할 일이었어요. 그 때도 서미혜는 오빠를 혐오스러워했죠. 그러다가 그 체력장 사건이 있었죠. 체력장 때문에 피곤해서 깊이 잠들었다가 갑갑해서 깨 보니, 오빠가 서미혜의 몸을 누르고 있었죠. 옷은 다 벗겨진 채로. 알고 있죠?”

 

“...

 

누가 봐도 오빠를 혐오해도 될 만한, 충분히 충격적인 사건이에요. 그런데 서미혜가 왜 죄책감을 갖는 거죠?”

 

오빠가 잘못한 건 맞아요. 분명히 오빠는 잘못했죠. 하지만 서미혜는 오빠가 잘못은 했지만, 죽을 만큼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 때는 어려서 그런 행동을 했지만, 그래서 오빠가 죽었지만, 분명히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서미혜가 가지고 다니는 그 사진도 오빠의 흉측한 모습이 아니라, 간질 발작이 일어나기 전의 예쁜 사진이라고 했잖아요. 서미혜는 그걸 기억하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더 죄책감이 커지구요. 자전거도 마찬가지에요. 자전거로 자꾸 남자를 유혹하는 것도 오빠를 대신할 사람을 찾는 방법인 거죠. 자전거로 오빠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서 오빠에게 못해주었던 것을 대신해 주려는 거죠. 말도 안되는 행동이지만, 말도 안되는 행동으로라도 덜어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에요. 죄책감 때문이에요.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이 죽었을 때, 죄책감이 더 커지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선생님은 문학선생님이면서, 서미혜의 감정이 그렇게 이해가 안되요?”

 

이건 아니었다. 수정이가 아무리 평소답지 않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수정이가 말을 하다가 저 혼자 흥분해서 더 격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한테, 다구나 리쌍샘한테 이러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수정이가 잘못하는 거였다. 미지는 더 이상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상처라는 함정

 

수정 학생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어찌되었건 서미혜는 오빠를 죽였어요. 그것 때문에 서미혜가 얼마나 상처 받고,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을지 이해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남자를 노골적으로 꼬시고, 그것도 이 남자가 안되니까 다른 남자를 또 꼬시고 그러는 건 죄책감이 아니라, 뭔가 핑계 같아요.”

 

리쌍샘을 보던 수정이의 눈길이 미지를 향했다. 미지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미혜는 또 다른 남자의 자전거를 타고 김승호 앞을 쌩 지나가죠. 아는 척도 안하고요. 김승호를 사랑했다면 그럴 수는 없을 거에요. 죄책감이건 뭐건 간에, 서미혜는 김승호를 그냥 이용했던 거에요.”

 

미지학생. 발표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명확하지 않은 게 있어요. 서미혜가 다른 남자의 자전거를 훔쳤다고 했는데, 근거가 뭐죠? 김승호에게 한 행동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근거가, 있나요?”

 

리쌍샘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날카로운 눈빛으로, 미지에게 물었다. 수정이의 말을 끊고 수정이의 이야기에 반박할 것만 생각하다가 갑자기 평소답지 않은 리쌍샘의 공격적인 질문을 듣고 미지는 당황했다. 리쌍샘, 나는 선생님 편이라고요, 이게 지금, 어떻게 된...

 

수정학생. 말해 보세요. 서미혜가 또 다른 남자의 자전거를 훔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있나요?

 

그건...김승호가...”

 

김승호는 그날 밤, 서미혜로부터 오빠 이야기를 듣고 뭔가 함정인 거 같다는 느낌에 서미혜의 방에서 도망쳐 나오죠. 그리고 보름 만에 그날, 서미혜를 그야말로 잠깐, 스치듯이 만나죠. 김승호도 그 보름 동안 서미혜에 대해서 새로 알게 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김승호는 서미혜가 다른 남자의 자전거를 훔치고 있다고 이야기 하죠. 그 자전거는 서미혜가 새로 샀을 수도 있고, 빌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옆집 봉구네 자전거를 훔친 걸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김승호의 주관적인 판단이에요. 이 주관적인 판단 이외에 서미혜가 다른 남자를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다른 객관적인 증거가, 있나요?”

 

조용히, 침착하게 말했지만, 리쌍샘의 목소리에는 어떤 날카로운 근엄함이 있었다. 뭔가 더 냉정해 주기를, 뭔가 더 치밀하고 책임감 있게 소설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었다. 미지는 할 말이 없었다. 수정이도, 다른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약간은 다들,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상처 받은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지요. 상처 받은 사람은 대개 너무 아파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외면하거나 도망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자기 마음이 어떠한지도 잘 모르게 되지요.”

 

아이들이 조용했다. 잠시 토론을 따라 격하게 오고갔던 감정 때문인지, 아까처럼 아이들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아까와는 달리 뭔가 진중한 분위기였다. 리쌍샘이 말을 이어갔다.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상처는 어떻게 함정이 되는가?’입니다. 어떤 사람이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지요. 수정이와 미지 학생 덕분에 우리가 순식간에 이 소설의 핵심으로 쑤욱, 들어올 수 있었네요. 고마워요. 그럼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 아니 상처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을 먼저 찾아 보세요. 이 소설에서 그 사람을 찾고, 치유하지 못한 상처로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둠별로 토의해 주기 바랍니다.”

 

리쌍샘을 보기 위해 칠판을 향했던 미지와 수정이는, 다시 마주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혜민이는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미지와 수정이의 얼굴만 계속 살폈고, 지원이는 수정이를 먼 눈길로 지켜보았다. 수정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리해 보면,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김승호야.”

 

그래, 맞아, 그런 거 같지? 뭐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김승..”

 

당연하지.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 서미혜랑 김승호 밖에 없잖아. 서미혜가 아니면 김승호겠지. 당연한 거 아냐? 문제는 이유잖아.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어떻게든 분위기를 수습해 보려는 혜민이의 말을 끊고, 미지가 차갑게 말을 던졌다. 그 때는 미지도 분명히 몰랐지만, 마음은 이미 틀어져서 노골적으로 수정이에게 시비를 거는 투였다. 수정이가 가까스로 참는다는 듯이, 천천히, 또박또박, 미지를 쳐다보고 말했다.

 

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야.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서미혜의 이야기를 빼고는, 나머지 서미혜에 대한 모든 판단은 김승호가 자기 멋대로 한 거야. 그러니까..”

 

그거 누가 몰라? 김승호가 왜 그런 거냐고?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미혜가 자전거 타는 걸 보고 남의 자전거니 다른 남자 꼬시니 그러고 있냐고? 어렸을 때 상처가 뭐? 그런 거 없는 사람도 있어? 다들 다치고 낫고 그런 거잖아. 뭐가 얼마나 무서워서 그렇게 맨날 도망가냐고, 배배 꼬여서. 누구처럼.”

 

정말 위험했다. 이러다가는 뭔가 일이 단단히 날 것 같았다. 혜민이가 어떻게든 둘의 이야기를 끊어 보려고 나섰다.

 

...저기...얘들아? 저기 소설을 보면, 김승호가 무서워 하는 게 딱 하나 나와. 저기, 아빠가 실수로 수도상회에서 소주 2병을 안가져와서 속상해서 막 울다가, 다음에 소주 2병 훔친 거 기억나지? 그 때 저기... 혹부리 할아버지한테 걸려가지구 김승호 아빠가 당황하니까, 김승호가 자기가 했다고 그러잖아. 그리고는 자기 아빠한테 뺨 막 맞고. 그 때 죽는 한이 있어도 에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고 하잖아. 그러니..”

 

그래. 김승호가 정말 두려워 하는 건 아빠가 되는 거야. 자식을 낳을 생각이 없다구. 그런 비참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거지.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게 얼마나 괴롭고 비참한 것일 수 있는지 김승호는 알게 된 거야.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도망갔다? 그래서 그렇게 자기 맘대로 생각하고 서미혜를 돌봐 주지도 않고 도망갔다고? 그게 말이 되냐?”

 

미지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마구 쏘아 붙였다. 아까까지 서미혜를 비난하다가 이제는 김승호를 마구 비난하고 있는 자신이 뭔가 앞뒤가 안맞는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뭐가 어디부터 꼬였는지 오늘따라 사람들이 다들 자기를 외면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수정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째 이야기를 시작할 때부터 꽁한 표정을 짓고는, 내내 미지에게 무언가 감정이 있는 거 같았다. 그 때부터 꼬였다. 왠지 이러면 안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미지는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서운함과 속상함을 어떻게 참을 방법이 없었다. 원래 미지는 이런 애가 아니었다. 미지는 명랑하고 쾌활하고 재밌는 사람이다. 뭔가 원래 자기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에 미지는 더 짜증이 났다.

 

자기랑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더 이해하고 감싸주고 그래야지. , 무슨 드라마나 연애소설 봐도 다 그래. 그런 사람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그러는 게 더 당연한 거야. 자기랑 비슷한 상처를 가진, 정말 예쁜 사람, 그것도 자신의 품에 안기려고 그렇게 애쓰는 사람을 그렇게 보냈다고? 무슨 그런 한심한 사람이 어디 있냐?”

 

, 염미지. 네가 뭘 알아? 네가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이 어떤 지 알기나 해? 누군가를 책임지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는데도, 그게 안되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고, 억울하고, 열받고 그런 걸 니가 이해할 수 있어? ”

 

이해해.”

 

, 뭐라구? 이해한다구?”

 

그 때까지, 그래도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쓰던 수정이가 결국 폭발해 버렸다. 눈물이 그렁그렁해 졌음에도 여전히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눈빛으로, 수정이는 미지를 죽일 듯이 쏘아보며 자신의 말을 조용히 씹어 뱉었다.

 

말 함부로 하지 마. 너는 몰라. 너 같은 애는 진짜 모른다구. 고개 끄덕이지 마. 고개 끄덕이지 말라고. 뭔가 다 알고 있다는 그 표정 그거 정말...”

 

 

대일밴드, 혹은 빨간약

 

사실 미지는 이제까지, 무슨 대단한 상처를 받은 적이 없다. 엄마는 선생님이었고, 아빠는 시청 공무원이셨다. 어렸을 때부터 뭐가 아쉬울 때는 있어도 부족한 적은 없었다. 엄마는 아이들의 걱정과는 달리, 미지의 생활에 대해 그리 큰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그럭저럭 공부를 해 내는 탓도 있겠지만 그러기 전부터, 엄마는 약간 거리를 두고 미지가 하려는 것을 지켜보는 편이었다. 아빠는 시청일로 이래저래 바쁘고 몇 년에 한 번은 근무지를 옮겨야 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얼굴을 자주 보며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주말에는 곧잘 여행도 같이 다니고 때로는 엄마를 빼 놓고 우리 딸하고만 데이트 하자면 둘이서 쇼핑을 하러 가기도 했다. 아빠는 중년에 수트를 멋지게 입은 아저씨가 드레스를 입은 늘씬하고 예쁜 딸과 함께 거리를 걷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너무 멋있었다며 말하곤 했다. 물론 우리는 덤벙한 등산 잠바를 입은 키 작은 아저씨와 하체 두꺼운 청바지 여고생의 조합이란 게 함정이었지만, 미지는 즐거웠다.

 

그래서 미지는, 이 방과후수업을 들으면서 더욱,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넘어져도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는 미지의 성격에서는, 대체 왜 그렇게 일어나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뒹굴뒹굴 대는지 좀 불쌍하긴 한데 이해가 안되긴 마찬가지였다. 갑갑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자고 내가 어디 가서 아픔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 자리를 마무리하고 교실에 돌아왔는지도 모를 만큼 미지는 정신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수학책을 펴 놓고는, 숫자 한 자 쓰지도 못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야자를 그렇게 보내고 있을 때, 리쌍샘이 미지를 불러냈다. 두 사람은 학교 옆 연못가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미지야, 아까 수업할 때, 좀 서운했니?”

 

?.. 아니요.”

 

그래... 미안하다. 선생님이 오늘은, 수정이가 많이 마음이 쓰여서 미지한테 좀 거칠게 이야기 한 거 같구나.”

 

아니에요. 이젠 괜찮아요. 그냥... 저도 괜히 마음이 심란해서 그랬어요. ... 선생님?”

 

?”

 

“...인문학이란 게... 사람들 이렇게 마음 아픈 거 공부하는 거에요?”

 

하하...... ,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서 공부하는 게 인문학이니까.”

 

그렇구나...그럼 전, 이젠 안배울래요.”

 

미지는 눈가에 눈물이 슬쩍 고이는 것을 애써 참았다. 리쌍샘 앞에서는, 더구나 오늘같은 날에는 울고 싶지 않았다.

 

으응? 아니 왜? 미지같은 인문학 영재가.”

 

아니에요. ... 전 별로 상처 받은 게 없어서요. 다른 사람 아픈 걸 이해하는 게 잘 안되나 봐요. 수정이도 그렇고, 지원이도 그렇고. 사실, 저 걔네들 무슨 일 있는 지 대강 알거든요. 그거 알았을 때, 이 깍쟁이들이랑 떡볶이 먹고 순대 먹고 같이 오밤중에 놀이터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할 때 그 때서야 듣고, 저 막 펑펑 울고, 같이 울고 그랬거든요. 근데, 너무 미안한 거에요. 저는 그런 상처가 없어서요. 괜히 미안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어디 가서 상처를 받고 올 수는 없잖아요.”

 

미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리쌍샘은 미지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왠지, 그걸 아는 체 하면 안될 거 같아 리쌍샘은 멀리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거면 돼. 미지야, 그거면 돼. 같이 옆에 있어주고, 같이 울어주면 돼. 미지는 상처가 없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미지같은 사람이 더 필요한 거야. 미지는 튼튼하니까, 누군가 아파서 쓰러졌을 때 도움을 줄 수 있잖아. 곁에 있어주고, 일어나자고 해 줄 수 있잖아. 내가 얼마나 아픈지, 넌 모르잖아, 라고 누가 그러면, 응 맞아요, 그래요, 그래도 당신이 일어나길 바래요. 당신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 같이 걷고 싶어요, 그러면 돼. 우리는 그걸 연습하는 공부를 하는 거야. 언젠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정말 잘 사랑하기 위해서.”

 

...미지는 누운 채로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다, 옆에 같이 벌렁 누워 있는 가방을 뒤졌다. 여기 어디 있을텐데... 아마 대일밴드와 빨간약이 이 가방에도 있을 것이다. 어디가 찌져지거나 하는 그런 큰 상처가 아니라면, 이거 두 개만 있으면 별 탈 없이 까진 데가 아물었다. , 여기. 찾았다. 미지는 일어나 가로등불이 잘 보이는 스텐드로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오른쪽 무릎이 또 여지없이 깨졌다. 다른 데는 약간 쓸렸을 뿐, 피가 베어나오지는 않았다. 이젠 팔꿈치에도 굳은 살이 베긴 것일까? 쓴 웃음을 지으며 미지가 물티슈를 꺼내 상처를 닦았다. 아팠다. 잠깐이지만, 미지의 모든 감각이 한 순간 무릎에 다 쏠리는 듯했다. 미지는 빨간약을 바르려고 윗 뚜껑을 돌리다가 문득, 멈췄다. 과학시간에 배운 것이 생각났다.

 

인류에게 죽음과 질병의 고통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그것을 획기적으로 막아준 의학의 발전은 대단한 것이었는데, 그 중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하찮게 여겨지는 것도 있다고 했다. 그게 빨간약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종기로 죽는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그 대부분이 종기를 짜고 난 후 항생제를 제대로 쓰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었단다. 그래, 빨간약.

 

그래,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나는 나다. 미지는 먼저 자신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인문학은 시작한다는 말을 기억해 냈다. 그래, 나는 나다. 내가 그 친구들, 그 아픈 마음들, 다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치유해 주지도 못하지만, 적어도 내 곁의 사람들 몸에 난 작은 상처는 내가 감싸줄 수 있지. 빨간 약을 바르고 후후 불어줄 수는 있지. 곁에 있어줄 수는 있지. 안아줄 수는 있지. 엎어진 김에 누워도 된다고, 다시 일어날 거면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해 줄 수는 있지.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살아나면, 살아서, 나와 함께 살아간다면, 그런 내 맘을 알아준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나는 빨간약이다. 그것만이라도 괜찮아.

 

상처 난 미지의 무릎 위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다시 또 상처가 쓰라렸다. 하지만 어디가 진짜 아픈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미지는, 다시 상처를 닦고 빨간약을 바르고 대일밴드를 붙였다. 두 개를 붙였다. 그래, 이거면 됐어. 미지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언덕배기에 지어져서 온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학교 스텐드에서, 온 시내와 아파트 단지의 불빛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미지는 오늘만큼은 왠지 그 불빛이 별빛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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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약, 혹은 대일밴드 - 2/4

자전거도둑 2014.09.28 17:14

빨간 약, 혹은 대일밴드

김소진, <자전거 도둑>

 

 

1.

 

저기... 수정아... 같이 가..어멋!!”

 

우당탕탕, 철퍼덕. ... 아야... 아이고 아파라... 아놔, 진짜.

 

오늘도 넘어졌다. 야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멀리 수정이를 본 듯해서 부르며 달려가던 참에 운동장 흙바닥에서 발라당 엎어진 것이었다. 에라이.. 대체 내 무릎관절에는 무슨 중요한 부품이 하나 빠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달팽이관이라던가, 그 귀 속에서 균형을 맞춘다는 그게 뭔가 심각하게 덜 꼬여서 그런 것인지, 유독 자기만 왜 이렇게 자꾸 넘어지는 건가 싶어서 미지는 속이 상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자주 넘어지는 미지였다. 그래서 미지의 무릎과 팔꿈치 주변에는 온갖 쓸리고 까진 흉터가 유난히 많았다. 얼마나 자주 넘어졌는지, 아기 때는 한 달음에 달려와 미지를 안고 상처를 살피던 엄마도 언젠가 부터는 미지가 넘어져도, 심지어는 무릎이나 팔꿈지에서 피가 베어 나와도, , 그래, 우리 딸, 탁탁 털고 일어 나야지, 아이고 이뿌다, 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하셨다. 미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아예 책가방 안쪽 비밀주머니에 대일밴드와 빨간약을 넣어두고 넘어지거나 다치면 이걸 바르고 붙이라고 엄마는 미지에게 말했다. 글쎄... 그게 서운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넘어져 다치면 빨간약을 바르고 대일밴드를 붙이는 게 워낙 익숙한 일이기도 했지만, 또 그 때 의사놀이를 할 때면 으레 자주 쓰는 장난감이 그것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릎과 손바닥과 팔꿈치가 욱신거리며 쓰라렸다. 어디에 큰 상처가 하나는 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었던 것은 누가 나를 보진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혹시 누가 나의 이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를 봤으면 어쩌지? 아 진짜... 이 쪽팔림을 어쩔 거냐... 일단, 확인을 해야 했다. 미지는 엎어진 채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다. 조금 안심이 되자 미지는 살짝 고개를 들어 좌우로 주변을 살펴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 미지는 다행이란 생각에 마음이 풀리면서도, 아무도 없는 텅빈 운동장에서 혼자 두리번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좀 우스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웃음이 나자 미지는 괜히 마음이 풀어져서 그냥 모든 게 다 용서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왕 엎어진거 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한두 번도 아니고. 엎어진 김에 누워 간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나? ‘상처라는 게...

 

...상처. 미지는 잠깐, 가슴이 싸늘해졌다. 상처. 오늘 방과후 수업 내내 했던 말이었다. 어쩌면 오늘 미지가 넘어진 것도 이 낱말에 마음을 뺏겨서 그랬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지는 멍하니 수업 때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다가 찌릿, 마음 한 구석이 아팠다. 그게 싫어서 미지는 엎어져 있던 몸을 돌려 철푸덕, 가슴을 쫙 펴고 벌렁 누워 버렸다. 수정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생생하게.

 

말 함부로 하지 마. 너는 몰라. 너 같은 애는 진짜 모른다구. 고개 끄덕이지 마. 고개 끄덕이지 말라고. 뭔가 다 알고 있다는 그 표정 그거 정말...”

 

. . . ... 수정이가 마저 못했던 말은 아마 이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미지는 다시 한 번, 아까보다도 더 오랫동안 가슴이 찡..하며 아팠다. 심장 안에서부터 무언가 뾰족한 것이 바깥을 향해 꾸우욱 찌르는 느낌.

 

모둠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이제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일이 전혀 없던 수정이가 갑자기 너무나도 흥분해서, 미지에게 뜨겁고 날카로운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미지로서는 전혀 예상을 못한 일이라 더 당황했다. 옆에 앉은 지원이에게 무언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미지가 수정이한테 그런 비난을 받을 만큼 뭘 잘못한 건 아니라고 지원이가 편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지원이는 가만히 있었다. 늘 그러던 것처럼 책상의 어느 한 구석을 멍하니 내려다 보며, 몸을 뒤로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 수정이가 한바탕 말을 쏟아 놓고 씩씩거리며 흥분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사이, 지원이는 몸을 책상 앞으로 숙이더니 조용히 수정이의 손을 잡았다. 수정이가 지원이를 쳐다보았다. 뜨거운 눈빛이었다. 지원이가 그 눈빛을 그대로 받았다. 차갑지만, 뭔가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수정이가 고개를 돌리며 살며시 손을 빼고는, 그대로 팔짱을 끼고 다른 곳을 보았다. 지원이는 그런 수정이를 말없이 보더니, 고개를 돌려 미지에게 말했다.

 

맞아. 이번에는 미지가 잘못한 거 같아. 네 잘못이 아니지만, 네 잘못이야. 그런 말은 미지가 하면 안될 거 같아.”

그런 말이라니.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이라니. 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했다고. 내가 수정이에게 한 말은 늘 하던 말이잖아. 어려운 말도 아니고, 나쁜 말도 아니었어. 비난하는 말도 아니고 조롱하는 말도 아니었어. 당연히 욕도 아니었지. 그게 대체 왜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말이야?

 

이해해.”

 

그게 미지가 한 말이었다. 어떻게 그 말이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말이란 것인지 미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럽고, 그래서 더 화가 나서 미지는 속으로 속상하고 화나는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말도 내뱉지는 않았다. 왠지 지금 이 자리에서는 잠시 멈추는 게 필요할 거 같아서, 미지는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그 말들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그리고 방과후수업이 끝나고, 오늘 함께 읽은 소설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 미지는 그게, 그러니까 잠시 멈추기로 하자 했던 그 마음만이, 오늘 자기가 한 말과 행동 중에 유일하게 잘 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뭔가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었다.

 

미지는 하늘을 보았다. 차가운 밤이었다. 맑은 밤이기도 했다. 오늘따라 도시답지 않게 별이 빛났다. 오늘 읽었던, 그래서 오늘 우리를 싸우게 했던 소설이 다시 생각났다.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이었다.

 

 

여자의 유혹

 

오늘은, 쌕쉬한 소설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소설을 나눠주며 리쌍샘은 오늘따라 왠지 능글능글, 무언가 기름진 눈빛으로 약간 들떠 있었다. 자기가 아는 중에 가장 섹시한 소설이라고 했다. 섹시한 소설이라니, 이 사람이 아무리 엉뚱하다고 해도 멀쩡한 여고생들을 데려다 놓고 무슨 야설을 보여주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여고에서는 남선생님들이 멀쩡히 잘 지내다가도 말 한 마디, 행동 한 번 잘못하면 그대로 변태로 찍혀서 어디 다른 학교로 갈 때까지 아주 죽을만치 고생하게 된다는 걸 혹시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미지는 좀 어이가 없으면서도 걱정이 되기도 하고, 또 조금은 두근두근해 하면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서미혜라는 여자가 있다. 에어로빅 강사란다. 아마도 늘씬하고 예쁠 테지. 소설에서도 서미혜의 모습이 나오는데, 흰 남방에 타이즈 바지를 입고, 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자전거를 탔단다. 세상에, 이 소설이 나온 게 1995년이라던데, 그 때면 지금보다 20년 전인데, 지금 한참 유행인 하의실종 스타일을 그 때 벌써 하고 다녔다니, 정말 대단하다. 미지는 얄쌍하고 비교적 가느다란 상체에 비해 하체가 좀 굵었다. 무릎의 자글자글한 상처 때문에 스타킹이 없으면 스커트는 왠만하면 입지 않게 되었고, 게다가 느낌 탓인지, 다른 애들보다 스타킹이 더 꽉 껴 보이는 거 같아서 그것도 별로였다. 스키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미지는 핏은 좀 사는데, 약간 헐렁한 바지만을 골라서 입었다. 그럴 때마다 다리선이 예쁜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그런데 서미혜는 그 차림으로 자전거를 탄다고?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이 여자는 김승호라는 남주네 아파트 윗층에 사는데, 이 남자의 자전거를 훔쳐 탔다가 매번 다시 갖다 놓는다. 그리고 김승호와 퇴근길에 만나서 술 한 잔을 한 며칠 후에 김승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일단 명분은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같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낯선 남자를 초대해 놓고, 이 남자가 올 것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서미혜는 김승호가 올 시간에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에어로빅 타이즈를 입고... ... 그건... 좀 민망하지 않나? , 대담한 여자일 수도 있지. 근데 그 다음은 더 이상하다. 집이 엉망이라고 하면서 뭔가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알고 보니 저녁식사도 다 준비해 놓고, 술도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이 여자, 샤워를 한다. 샤워를 했다고?

 

그래, 샤워를 했다. 만난 지 고작 두 번 밖에 안되는 낯선 남자를 집 안에 들여 놓고, 서미혜는 샤워를 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자고 하더니 커텐을 치고, 불을 끄고, 김승호의 옆에 앉아 과일을 깎는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가는 김승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이건 뭐지? 내가 이상한 건가? 미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름 명랑하고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하는 미지도 이런 행동은 감히 상상이 안되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정말 서미혜가 실제로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남자를 꼬시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자, 뭐지?

 

김승호를 보고 첫눈에 반했을 수도 있지.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세상에는, 있잖아?”

지원이 네가 왠일로 그런 로맨틱한 말을 다 하냐. 하지만 난 뭔가 아닌 거 같애. 첫눈에 반한 사람치고는, 글쎄.. 뭔가 너무 치밀해. 김승호의 윗집에 살면서, 김승호의 자전거를 훔쳐 타면서, 서미혜는 김승호가 어떤 사람인지, 직업이 뭔지, 언제 퇴근하는지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 게다가 자전거, 그 자전거를 그렇게 탔다가 갖다 놓을 수 있다는 건 김승호가 잃어버렸다는 그 자전거 열쇠를 어디서 주웠다는 건데... 뭔가 이상해. 이건 반한 게 아니라, 뭔가 작업 같은 느낌이 나.”

그래, 혜민이 말이 맞아.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야? 이거 완전 꽃뱀이잖아. 완전 남자한테 꼬리치는 게...”

아니 뭐, 꽃뱀까지는 아니고...”

 

미지의 말을 듣다 뭔가 표정이 굳어진 수정이가 미지의 말을 끊고 이야기를 꺼냈다.

 

서미혜가 김승호를 유혹하고 있다. 이건 맞는 거 같아. 하지만 꽃뱀이다, 이건 아닌 거 같아. 꽃뱀이라 하면 남자를 유혹해서 무언가 돈이나 권력 같은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해야 하는데, 서미혜는 그런 모습은 없잖아.”

그래도 하는 걸 보면 꽃뱀이잖아. 분명히 뭔가가 있어. 자기 예쁜 거 이용해서 남자들 비위 맞춰 가지고 꼬시는 이런 여자들, 뻔하다구.”

미지의 말에 수정이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혜민이가 나섰다.

아니, 그래도 수정이가 정리한 건 알아봐야 할 거 같아. 서미혜의 굳이 자전거를 가지고, 이렇게 치밀한 과정을 거쳐서 남자를 유혹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말야. 지원이 넌, 아직도 사랑이라고 생각해?”

글쎄... 아닌 것도 같네. 그럼 이유가 뭔데?”

아마도 오빠 때문이 아닐까 싶어. 어릴 때 자전거를 잘 탔다가 간질 발작이 나서 벽장에 가둬져 키워졌다는 그 오빠. 소설 뒷부분에 서미혜가 자기 오빠를 죽인 이야기를 하잖아. 뭐 자기 손으로 죽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죽인 거나 다름없지. 어쨌든 중요한 건 서미혜가 자기가 오빠를 죽였다고 느끼고 있다는 거야. 그게 죄책감이 돼서 그걸 어떻게 속죄해 보려고 그러는 거지.”

말도 안돼. 수정아, 확실히 하자구. 서미혜가 죽였다고 느끼고 있다고 하면 안돼. 서미혜가 죽였다구. 2주 동안 오빠를 벽장에 가둬 놓고 밥 한 끼 안줬다잖아. 그건...”

서미혜가 가둔 건 아니고, 가둬 놓은 건 엄마고, 서미혜는 하루에 밥을 한 번씩 주기로 했었지. 그걸 안했을 뿐이야.”

어쨌든. 엉덩이나 궁뎅이나 마찬가지지 뭐. 그건 살인이야. 이건 명백히 살인이라구. 서미혜는 자기 오빠를 죽였다고. 존속살인은 중죄야. 그래 놓고 나중에야 그걸 속죄하겠다고 자전거로 남자를 꼬신다고? 말도 안돼. 이건 뭐, 거의 미쳤다고 봐야지.”

 

미쳤다고 봐야지, 라는 미지의 말에 수정이의 눈빛이 꿈틀, 했다. 수정이가 뭔가 말을 더 하려는데, 리쌍샘이 리듬을 타며 집중하는 박수로!’라고 하셨다. 첫수업을 시작하는 날, 리쌍샘이 부탁한 약속이다. 토론을 하다 보면 이야기에 너무 몰입하다가 수업진행이 안될 수도 있으니, 리쌍샘이 집중하는 박수로!’라고 말하면 우리가 박수를 세 번 치면서 선생님을 봐야 하는 것이다. 아이고, 세상에. 그 유치한 규칙을 리쌍샘은 되게 진지하게 소개해서 더 웃겼는데, 이게 또 의외로 수업을 하다 보니 꽤 괜찮았다. 박수를 몇 번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리쌍샘한테로 시선이 모아졌던 것이다.

 

, 이렇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쉬, 사람은 잘 생기고 봐야 하는 군요.”

 

~~~~ 야유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가 아이들의 입에서 동시에 새어 나왔다. 그 소리에 다들 웃음이 나서 더러 깔깔대기도 했는데, 리쌍샘이 함께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모둠토의를 하면서 이미 많은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눈 거 같은데요, 서미혜의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한, 무언가 급하고 과잉된 행동의 원인을 살피는 것이 먼저 중요합니다. 먼저, 서미혜와 김승호의 스킨쉽이 어디까지 갔는지, 아는 사람?”

 

이 소설에 스킨쉽이 나와요?”

 

놀라며 크게 말한 7반 연재의 너스레에 아이들이 꺄아악 하며 웃었다. 그리곤 다들 소설을 다시 읽어보려고 하던 때에 갑자기 혜민이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가슴이요!”

 

아이들이 다시 꺄아악 하며 술렁였다. 다들 혜민이를 돌아보았다. 혜민이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소설 학습지 10쪽에 나와요. <그때 내 손아귀 안으로 도톰한 살덩이가 한가득 미끄러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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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약, 혹은 대일밴드 1/ 4

자전거도둑 2014.09.28 14:55

빨간 약, 혹은 대일밴드

김소진, <자전거 도둑>

 

 

1.

 

저기... 수정아... 같이 가..어멋!!”

 

우당탕탕, 철퍼덕. ... 아야... 아이고 아파라... 아놔, 진짜.

 

오늘도 넘어졌다. 야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멀리 수정이를 본 듯해서 부르며 달려가던 참에 운동장 흙바닥에서 발라당 엎어진 것이었다. 에라이.. 대체 내 무릎관절에는 무슨 중요한 부품이 하나 빠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달팽이관이라던가, 그 귀 속에서 균형을 맞춘다는 그게 뭔가 심각하게 덜 꼬여서 그런 것인지, 유독 자기만 왜 이렇게 자꾸 넘어지는 건가 싶어서 미지는 속이 상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자주 넘어지는 미지였다. 그래서 미지의 무릎과 팔꿈치 주변에는 온갖 쓸리고 까진 흉터가 유난히 많았다. 얼마나 자주 넘어졌는지, 아기 때는 한 달음에 달려와 미지를 안고 상처를 살피던 엄마도 언젠가 부터는 미지가 넘어져도, 심지어는 무릎이나 팔꿈지에서 피가 베어 나와도, , 그래, 우리 딸, 탁탁 털고 일어 나야지, 아이고 이뿌다, 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하셨다. 미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아예 책가방 안쪽 비밀주머니에 대일밴드와 빨간약을 넣어두고 넘어지거나 다치면 이걸 바르고 붙이라고 엄마는 미지에게 말했다. 글쎄... 그게 서운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넘어져 다치면 빨간약을 바르고 대일밴드를 붙이는 게 워낙 익숙한 일이기도 했지만, 또 그 때 의사놀이를 할 때면 으레 자주 쓰는 장난감이 그것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릎과 손바닥과 팔꿈치가 욱신거리며 쓰라렸다. 어디에 큰 상처가 하나는 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었던 것은 누가 나를 보진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혹시 누가 나의 이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를 봤으면 어쩌지? 아 진짜... 이 쪽팔림을 어쩔 거냐... 일단, 확인을 해야 했다. 미지는 엎어진 채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다. 조금 안심이 되자 미지는 살짝 고개를 들어 좌우로 주변을 살펴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 다행이었다. 미지는 다행이란 생각에 마음이 풀리면서도, 아무도 없는 텅빈 운동장에서 혼자 두리번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좀 우스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웃음이 나자 미지는 괜히 마음이 풀어져서 그냥 모든 게 용서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왕 엎어진거 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한두 번도 아니고. 엎어진 김에 누워 간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나? ‘상처라는 게...

 

...상처. 미지는 잠깐, 가슴이 먹먹해졌다. 상처. 오늘 방과후 수업 내내 했던 말이었다. 어쩌면 오늘 미지가 넘어진 것도 이 낱말에 마음을 뺏겨서 그랬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지는 멍하니 수업 때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다가 찌릿, 마음 한 구석이 되게 아팠다. 그게 싫어서 미지는 엎어져 있던 몸을 돌려 철푸덕, 가슴을 쫙 펴고 벌렁 누워 버렸다. 수정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생생하게.

 

말 함부로 하지 마. 너는 몰라. 너 같은 애는 진짜 모른다구. 고개 끄덕이지 마. 고개 끄덕이지 말라고. 뭔가를 알겠다는 그 표정 그거 정말...”

 

. . . ... 수정이가 마저 못했던 말은 아마 이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미지는 다시 한 번, 아까보다도 더 오랫동안 가슴이 찡..하며 아팠다. 심장 안에서부터 무언가 뾰족한 것이 바깥을 향해 꾸우욱 찌르는 느낌.

 

모둠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이제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일이 전혀 없던 수정이가 갑자기 너무나도 흥분해서, 미지에게 뜨겁고 날카로운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미지로서는 전혀 예상을 못한 일이라 더 당황했다. 옆에 앉은 지원이에게 무언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미지가 수정이한테 그런 비난을 받을 만큼 뭘 잘못한 건 아니라고 지원이가 편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지원이는 가만히 있었다. 늘 그러던 것처럼 책상의 어느 한 구석을 멍하니 내려다 보며, 몸을 뒤로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 수정이가 한바탕 말을 쏟아 놓고 씩씩거리며 흥분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사이, 지원이는 몸을 책상 앞으로 숙이더니 조용히 수정이의 손을 잡았다. 수정이가 지원이를 쳐다보았다. 뜨거운 눈빛이었다. 지원이가 그 눈빛을 그대로 받았다. 차갑지만, 뭔가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수정이가 고개를 돌리며 살며시 손을 빼고는, 그대로 팔짱을 끼고 다른 곳을 보았다. 지원이는 그런 수정이를 말없이 보더니, 고개를 돌려 미지에게 말했다.

 

맞아. 이번에는 미지가 잘못한 거 같아. 네 잘못이 아니지만, 네 잘못이야. 그런 말은 미지가 하면 안될 거 같아.”

그런 말이라니.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이라니. 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했다고. 내가 수정이에게 한 말은 늘 하던 말이잖아. 어려운 말도 아니고, 나쁜 말도 아니었어. 비난하는 말도 아니고 조롱하는 말도 아니었어. 당연히 욕도 아니었지. 그게 대체 왜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말이야?

 

이해해.”

 

그게 미지가 한 말이었다. 미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 말이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말이란 것인지. 그래서 더 당황스럽고, 그래서 더 화가 나서 미지는 속으로 이런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말도 내뱉지 않고 미지는 가만히 있었다. 미지는 그게 무슨 말이든 왠지 지금 이 자리에서는 잠시 멈추는 게 필요할 거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과후수업이 끝나고 미지는 그게, 그러니까 잠시 멈추기로 하자 했던 그 마음만이, 오늘 자기가 한 말과 행동 중에 유일하게 잘 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었다.

 

차가운 밤이었다. 맑은 밤이기도 했다. 오늘따라 도시답지 않게 하늘의 별이 빛났다. 그렇게 미지는 밤하늘을 보며 한참을 누워서, 오늘 읽었던, 그래서 오늘 우리를 싸우게 했던 소설을 다시 생각했다. 그건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이었다.

 

 

여자의 유혹

 

오늘은, 쌕쉬한 소설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소설을 나눠주며 리쌍샘은 오늘따라 왠지 능글능글, 무언가 기름진 눈빛으로 약간 들떠 있었다. 자기가 아는 중에 가장 섹시한 소설이라고 하셨다. 섹시한 소설이라니, 이 사람이 아무리 엉뚱하다고 해도 멀쩡한 여고생들을 데려다 놓고 무슨 야설을 보여주는 건 아니겠지? 남선생님들이 멀쩡히 잘 지내다가도 한 마디, 행동 한 번 잘못하면 그대로 변태로 찍혀서 어디 다른 학교로 갈 때까지 아주 죽을만치 고생하게 되는 게 여고의 생리라는 걸 혹시 모르시나? 미지는 좀 어이가 없으면서도 걱정이 되기도 하고, 또 조금은 두근두근하며 기대가 된 채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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